오늘 선포식을 계기로 부안평화의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가 부안 주민들에게 얼굴을 드러내며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돌 하나 얹는 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운동의 일환입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큰 흐름이 있을 때, 빨리하느냐 늦게 하느냐 도 중요하지만 역사의 흐름에 함께하며 힘을 모은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부안에서는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이 없는데 왜 소녀상 건립이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이런 참혹한 비극이 부안 사람들에게는 없었으면 하는 순박한 바람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부안군청에서 2012년에 조사했던 ‘부안 태평양 전쟁 피해자 명단’에는 1,335명이 신고 되었습니다.
동원된 지 70여 년이 지난 늦은 실태 파악으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사망한 뒤여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신고할 수 없는 처지였을 것입니다. 이 자료에는 군인과 군무원, 노무자, 정신대 등으로 구분됐는데, 징용으로 끌려간 노무자가 가장 많고 군무원과 군인 순입니다. 정신대로 신고 된 사람은 세 사람인데, 아픈 과거를 들추지 않으려 해서 이지 어디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정신대로 신고 된 엄 소녀는 13세에 끌려갔는데 지금으로 보면 초등학교 6학년인 어린 소녀였습니다. 생존여부에는 행방불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두 김 소녀 중 한 명만이 해방된 그해 9월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안의 소녀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어가 군인들의 성 노예로 삼았기 때문에 딸이 있는 집에서는 어린 나이에 서둘러 혼인시키느라 노심초사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은 너무 흔한 일상사였습니다. 1940년대 초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부안군청 마당으로 끌려온 남녀 젊은이들은 차에 실려 백산삼거리를 거쳐 신태인 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기차로 대전을 거쳐 부산에 닿으면 큰 배에 실려 군인으로, 군무원, 노무자, 정신대로 먼 곳까지 끌려갔습니다.
부안평화의소녀상 건립은 단순히 피해자 소녀들만 기억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의 수난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소녀상 건립은 첫째, 지역의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과제를 다시 수행하는 제2의 광복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지역 피해자의 아픈 기억의 역사를 되새겨야 합니다. 셋째는, 미래 부안의 주인공들인 학생들에게 역사의 학습장을 만들어 주는 데 의미를 둬야 할 것입니다.
부안평화의 소녀상 건립이라는 목적 달성이 끝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의로운 부안지역 역사 세우기의 출발입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2월 21일 자문위원장 정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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