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해소에는 춤만큼 좋은게 없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상설시장은 여느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전주식품, 황제식품, 자연식품, 문화상회, 강현주 주단, 오복떡집, 삼원쇼핑 등 상설시장을 주름잡는 미모의 안주인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춘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7시를 얼마 남기기 않은 시간, 상설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미세하지만 규칙적인 진동을 쫓아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설시장 북쪽 공중화장실을 지나면 녹색 철재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부안 상설시장이 2층으로 된 건물이었던가’라는 흥미로운 생각과 함께 절반쯤 계단을 오르니 진동이 크게 느껴진다.
오밀조밀 시장 지붕이 발아래로 깔린다. 이곳은 옥상이다. 계단 끝에서 우측으로 돌아 보이는 건물이 진동의 진원지이고 사라진 안주인들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쿵짝 쿵짝”,“하나 둘 셋 넷” 음악과 구호에 맞춰 일사 분란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훔쳐보는 내내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생전 밟아보지 못한 스탭으로 발이 움직이고 볼펜 잡은 손가락은 하늘을 찌른다.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것은 아마 계단을 오를 때 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 한참을 구경한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즐긴다.
이들은 매년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 가고 있는 17명의 부안상설시장내 댄스 동아리다. 영어가 들어간 거창한 이름도 아니다. 그냥 상설시장 댄스팀이다.
매주 2회 저녁시간에 만나 키워온 댄스실력은 지난 2016년 대구에서 열린 전국 시장인 댄스동아리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역사를 만들었다.
부안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초청순위 1번이 된 것은 훨씬 이전부터다. 무릎이 안 좋다, 쑥스럽다, 안무를 다 못 외웠다, 댄스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면 모두 핑계가 된다. 못 고치는 관절병이 없고 미친 사람도 돌려놓는 정신 치료도 가능하다고 한다.
댄스 동아리의 고참 박영자 언니는 올해 70하고도 2살 더 먹었다. 부안남자를 만나 전주에서 부안으로 시집왔다. “부안 남자들 원래 인물들이 좋아, 서글서글하니 붙임성도 좋고 나하나 굶겨 죽이지는 않겠다 했지, 호강시켜준다는 말도 귀에 쏙 들어오고” 이랬던 잘생긴 남편은 11년 전에 곁을 떠났다.
시집와 시장에서 ‘전주식품’으로 자리 잡은지 38년이 다 됐다. 온갖 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팔아봤다. 외국에서 성공한 아들내미 인천으로 시집간 딸내미 등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 다 출가하고 지금 남은 것은 이 가게자리 하나라고 말한다.
“무릎이 하도아파 몇 년전 수술했는데 댄스보다 좋은 물리치료는 못 봤어. 이제 거의 왕년의 무릎을 되찾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
그래도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한다. 댄스 순서도 모두 알고 가만히 누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문제 없겠다 하지만 생각만 앞설 뿐 몸이 잘 안 따른다고 한다. 그럴 땐 웃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요령이라고 한다.
댄스 동아리 맨 앞줄에서서 힘으로 댄스를 이끌어 가는 여성이 눈에 들어 온다. 힘은 젊음에서 나온다. 동아리 막내 서혜라씨는 오복 떡집을 운영 중에 있다.
그녀는 바쁜일이 있어 댄스연습이 끝난 다음날 찾아 만났다.
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한 것은 3년이 채 안됐다고 한다. 원래 시장 밖 도로변 상가에서 떡집을 시작했다. 시장 안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알았다면 진작 옮겼을 것이라고 한다. 상인회 회원들 댄스 동아리 회원 등 모든 선배 언니들이 조언해주시고 걱정해주고 격려해줘서 늘 든든하다고 한다.
떡에 들어갈 밤을 깍느라 눈도 안 마주치고 10분 째 세워둔다. 이런저런 대화로 그녀의 친언니가 기자의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반갑게 잘 깍인 밤을 건낸다.
“아무래도 막둥이라 연습도 빠짐없이 나가고 대회도 모두 참여할려고 맘 먹고 있어요. 지금도 맨 앞줄에서 춤 출 땐 창피하고 쑥스럽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관객들 표정도 보이고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얼굴이 많이 두꺼워진 건지 몰라도”
그녀는 댄스동아리에서 스트레스도 풀고 선배 언니들과 웃음으로 하루를 마감해서 더없이 좋다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더불어 고참 언니들의 건강도 염려하는 착한 막둥이다.
오복 떡집 맞은편에는 일원, 이원도 아닌 삼원 쇼핑이 있다. 이곳 안주인도 댄스 동아리 회원이다. 막둥이와 나란히 앞줄에서 댄스팀을 이끌기도 한다.
단단함이 엿보이는 그녀는 오늘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다며 사진촬영은 다음으로 미루자고 한다. 역시 프로다.
시장에 터 잡은지 몇 년이나 되었나요?. 거의 모든 시장상인들은 덧셈 뺄셈이 빠르다. 하지만 계산방식은 다르다. 우리 아들이 지금 몇 살이니 몇 년 됐다거나, 내가 시집 온지 몇 년 됐고 시집오고 다음해 들어왔으니 몇 년 됐다는 식의 계산법이다.
그녀 또한 딸이 31살이니 만으로 30년 됐다고 계산해 말한다. 몇 년전 시어머니가 세상을 등져 부담많은 안주인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건강도 찾고, 사는 재미도 느끼고, 스트레스도 날려버리고, 이 보다 좋은 취미생활이 없죠. 댄스도 댄스지만 언니 동생들과 1박2일로 대회에 나가면 함께 수다도 떨고 잠도 같이 자던 기억들이 너무 소중해요”
그녀는 살아가는 힘을 댄스동아리와 같이 함께하는 시장 사람들에게서 찾은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끝난 설숭어 축제에 공연 준비하느라 지쳤을 법 한데도 이들의 겨울밤 춤사위는 1시간을 넘겨 마무리 됐다. 그녀들의 두 번째 청춘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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