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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우리마을 프로젝트- 어르신께 듣는 부안 옛이야기⑥

<청소년 우리 마을 프로젝트>는 농어촌 교육특구 공모사업의 하나로 지역 중·고등학생들이 자신이 사는 마을을 중심으로 부안지역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활동입니다. 현재 부안지역 6개 학교가 27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부안여고 1학년 4반 학생들은 “나도 부안의 작가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는 부안 옛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지역 경로당이나 마을 어르신을 찾아가 인터뷰를 함으로써 과거의 부안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이를 글로 남기는 활동입니다. 어르신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학생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모두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랍니다.                               편집자 말

이정노 할아버지 댁에서 함께 찰칵. 학창시절 얘기를 하실 때는 소년처럼 밝게 웃으셨다.

“그래도 부안만큼 좋은 곳이 없다”

이정노 할아버지의 옛이야기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금산마을. 이정노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며 일흔 평생을 이 마을에 사셨다. 할아버지 댁 주변에는 조선 시대 정종 때 이름 붙여진 수문산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문산은 ‘닦을 수(修)에 글월 문(文)’자를 쓴다. 학문을 닦는다는 의미다. 금산마을에도 유래가 있다. 마을 이름이 지어질 당시 정선이 유배를 당해 이곳에 머물면서 글을 쓰고 거문고를 많이 연주하였다고 해서 거문고 금(琴)자를 사용해 마을 이름이 금산마을이 되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할 줄 알았는데, 마을 유래부터 소개까지 생생하게 해주시는 이정노 할아버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큰 지 저절로 느껴졌다. 뒷산 이름에 글월 문(文)자가 있어서인지, 마을이름의 유래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어렸을 적 꿈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집에는 돈이 부족했으니까 공부를 많이 할 수 없었지.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학교 다닐 만큼 돈이 없었어. 당장 그날 그날 살아가기도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나만 그런 건 아니야.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을 거야. 지금은 그 시대에 태어난 게 너무 아쉬워. 꿈을 이룰 수 없어서"
어디 이정노 할아버지뿐이었을까? 당시를 살아내신 많은 어르신들이 그런 어려운 시절이 있으셨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 또래 친구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이 할아버지가 내 나이 때에는 무엇보다 원하던 것들이라는 것이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의 아쉬움은 느껴지는데 완전히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 이야기 속의 내 또래 소년의 삶은 2008년을 살고 있는 지금 나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래도 내 또래였던 할아버지의 꿈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를 진학 못하신 후 더 공부할 방법은 없었는지 여쭈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졸업 후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실 수 있으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공부의 한을 푸셨다고. 그래서인지 힘들게 서당을 다니실 때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셨다.
"서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밥을 다 먹으며 지냈지.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고 오후에도 공부하고 새벽에도 공부하니까 식구들 만날 시간도 만들기 어려웠어. 어쩌다 가끔 시간이 나면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이 다였단다"
공부를 하느라 집에도 잘 가시지 못하셨다는 할아버지. 가끔 공부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는 할아버지가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나셨더라면 그 누구보다 훌륭한 학자가 되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던 개구장이 10대 소년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던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나의 공통점은 없을까? 학교 다니실 때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일까?
당시 창북리에서 부안으로 초등학교를 다니셨는데, 그 먼 거리를 매일 걸어서 등하교를 하셨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거리를 배우는 것이 좋아서 매일 아침 흙길을 뛰어 학교로 달려가셨다. 학교를 가는 길에는 내동사거리는 곳에 풀빵집이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 때문에 할어버지는 그 풀빵집에서 풀빵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기를 바라곤 하셨다.
시대가 변해도 학교 근처 맛집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먹고 싶은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풀빵집 이야기를 하시면서 입맛을 다시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와 공통점을 찾은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아쉬운 용돈에 할어버지가 풀빵을 못 사드셨을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한문을 잘 아시던 할아버지는 친구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주고 받은 돈으로 가끔 풀빵을 사드셨다고 한다. 역시 대단하시다.
학생시절 가끔 시간이 나셨을 때는 염창산을 오르셨다. 예전 염창산에는 쥐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그 산에 올라 바위에서 놀았다. 말씀하시던 때에도 그 날들의 기억이 떠오르시는지 절로 웃음을 보이셨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 곳에 가끔 가보실까?
“오리 쉼터를 만들면서 공사하는 중에 그 바위를 땅을 파서 묻어버린 것 같아. 아니면 부숴서 치웠던가. 그것도 다 추억이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더 이상 그 바위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옛날에 할머니와 만났을 적, 학생 때는 아니지만 부안의 세 개정도 있던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것도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부안을 떠나지 않고 살고 계셨던 걸까?
“젊었을 때는 떠나고도 싶었지. 더 넓은 세상도 보고 싶었고. 그런데 떠나는 것도 돈이 있어야하지. 돈이 없으면 떠날 수 없고. 떠난다고 한들 집이 있겠어,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이 있겠어. 예전에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 둘째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힘들었지. 첫째도 어렸고. 그래도 부안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됐지. 그래서 떠날 생각을 접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금산마을이 좋아서 돈이 있어도 떠날 생각도 없고”
오래 알아야 정말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일까? 할아버지와 지금은 우리가 잘 모르는 장소에 있던 바위이야기나 새로 개발하며 없어진 풀빵집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나는 어떤가를 돌아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다보니 오랫동안 살아 익숙해져 하찮게 여겨졌던 내 주위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조금 알게 될 것도 같았다. 부안이 도시에 비하면 불편한 점들도 있지만, 할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나에게 소중한 고장이 될 것이다.                       글 /  부안여고 1학년 이다연

 

우병길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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