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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77- 부안의 역사문화 향기는 누가 만드는가?

지는 해가 서쪽에 잠기며 동쪽을 되비추니
강에 가득한 물결 빛이 한꺼번에 붉어지네.
인간 세상도 이때부터 황혼에 가까워지니
           -가운데 줄임-
그대와 함께 서서 큰 바다 바람을 맞네
어두움은 어디서 오고 밝음은 어디로 가는지
뜬구름 같은 인생을 깨달으며 이 가운데 늙어가네.

12월에 시 한편을 읽는다. 개정면 발산사람 소승규(蘇昇奎)의 『난곡유고(蘭谷遺稿)』에 실린 시다. 소승규와 친구들이 1897년 4월 16일부터 19일 동안 변산을 유람하며 기록한 기행문에는 다양한 시들이 들어 있다. 시에서 낙조는 그냥 해 떨어짐이 아니라 동쪽을 다시 비친다는 순환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인간은 늙어가면서 뜬구름이란 것도 깨닫는다. 소승규의 53세 때의 일이니 그때는 지긋한 나이로 농익은 인생사를 시에 담아 풀어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절창(絶唱)은 ‘그대와 함께 큰 바다 바람을 맞는다’는 대목이다. 거친 바람을 함께 맞는 그대 있음에 황혼도, 어둠도, 늙어감도 그저 두렵지 않는 깨달음의 과정이려니…
사진을 들춘다. 2006년에 변산해수욕장에서 해넘이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 글을 이어간다. 2018년의 부안 지역 사회를 살피며 역사문화에 남을만한 일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개인의 관점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정답은 없다. 여럿이 있겠으나 필자는 두 가지 정도로 좁혀서 얘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변산’이라는 영화다. 올해 본 몇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며칠 전에는 가까운 지인이 외국에 갔다 오다가 비행기 속에서 이 영화를 봤다며 이런 좋은 영화가 뜨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감동을 전했다. 그동안 부안의 세트장에서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 ‘변산’은 부안의 작은 골목, 병원, 지역학교의 교실, 갯벌이 친근하게 화면을 채웠다. 이곳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생활  공간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늘 상 봐왔던 노을이 낯설게 다가오면서 가슴을 울렸다. 변산 영화를 통해서 지역에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일상들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옛 것은 없애고, 길 넓히고 번듯한 구조물 세우는 일에 길들여졌던 우리에게 ‘미래 부안을 어떻게 가꾸어나갈 것인가’라는 화두(話頭)를 던졌다.
둘째는 올 12월 들어 가열차게 시작된 ‘부안 평화의소녀상 건립’이다. 해방 후 나라의 축소판인 부안에서도 좌우대립과 학살이 난무했다. 친일잔재 청산은 먼 얘기가 되었고, 일본 나무라하여 부안초등학교의 벚나무가 잘려나가고 부안의 기념비에 남아 있던 소화(昭和)라는 연호를 파서 없애는 소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들추어내고 그런 아픈 과정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쓰려는 노력은 없었다. 해방된 지 74년이 돼서야 새로운 역사 쓰기가 소녀상 건립이라는 이름으로 부안에서 시작되었다.
함께 서서 큰 바다 바람 맞는 당신이 있었기에 올해는 행복했다. 함께 손잡고 행동하는 그대가 역사의 주인공이니, 그 향기는 당신이 만드는 부안의 미래이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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