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삶 바꾼 김효중씨의 ‘부안항쟁’

“요즘 무얼 하며 지내세요?” 하는 물음마다 “아! 예 그냥 저냥 지냅니다.”라는 답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예전 농사지을 때 같으면 지금 쯤 가을걷이 하랴 겨울작물 붙이랴 바빴을 테지만, 작년 올해 두해 째 이렇다하게 지내고 있지 못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바쁘긴 하다. 밥하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불 때고,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청소까지 하고 나면 짧기만 한 가을 해는 정신없이 산등을 타고 넘는다. 게다가 반핵집회라도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그야말로 하루가 온통 전쟁이다. 부안 핵폐기장 문제는 우리 가족을, 그리고 내 삶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때 되면 심고 거두는, 괭이질 호미질로 흙과 한 살 되어 살아가던 농투사니 가족을 병원으로 감옥으로 아스팔트위로 뿔뿔이 흩어 찍어 내몰았다.
올 봄 아내가 직장에 다니게 된 뒤부터 집안 살림, 아이들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말하자면 전업주부가 된 셈이다. 핵폐기장 투쟁이후 내 삶에서 쉽게 맞닥뜨리지 않을 것 같은 체험들을 더러 하게 되었는데 전업주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부안투쟁은 우리 민주화운동 역사상 많은 기록과 함께 다른 점들을 남기고 있다. 200여 일간 계속된 촛불집회, 40일을 넘긴 등교거부, 단일사건 최다 구속자, 자체주민투표, 주식증여를 통한 대안신문의 창간,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한 대안운동 등인데 특히 ‘부안항쟁’을 평가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중심의 운동 즉, ‘여성성’이 드러난 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높은 점수를 매기곤 한다. 함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하는 바이다. 눈보라 속에서도 자리 한 번 뜨지 않고 두세 시간을 버티고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 하루라도 빠지면 자신의 그 빈자리에 틈이라도 생길까 염려하는 마음, 살벌한 전경들과 맞서 두려움 없이 선두에서 싸우는 이들도 여성이었다. 여성의 힘은 길고 험난한 반핵투쟁의 과정에서 부안군민들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씨앗불이었다.
이처럼 부안반핵민주운동을 아래로부터 떠받치고 있는 힘,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뿜어내고 있는 여성적 운동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발전된 내일’은 환상이며, 행복한 지금이 아니라면 행복한 내일 또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자본은 그런 개발의 환상으로 우리를 얼마나 유혹하고 있는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위에 끝가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은 안다. 지금 이 순간 저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스갯소리와 춤사위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생명과 평화가 어우러지는 세상, 핵폐기장 백지화의 내일은 없다는 것을.
작년 봄 나는 10여 년간 농사꾼으로서의 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삶의 터를 옮겼다. 외부의 변화가 진정 내면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돌아본 내 과거에서 가장 많이 후회했던 것은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닌 가족,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항상 내 계획과 생각의 틀 속에 아이들을 두었고 예상했던 일에 어떤 변수라도 생기면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지금 여기 함께 있기를 요구한다. 절기를 따라 사철 연중 이어지는 농사일에서 아이들의 요구는 언제나 내일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자투리 일들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 나는 다시금 생각이 많아진다. 해를 넘겨 키로 자란 쑥대밭에서, 억새풀 우거진 묵은 논둑에서, 구석구석 잡풀들로 빼곡한 마당에서 그간 밀쳐두었던 이런저런 계획들이 나를 자꾸 조바심 나게 하는 것이다. / 진서면 김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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