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 상대로 이긴 민주주의의 새 역사

1년 넘게 계속된 부안 주민의 끈질긴 싸움이 결국 정부의 핵폐기장 터 선정작업을 중단시켰다. 게다가 부안을 포함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이 거의 확정돼 추가 원전 건설을 논의키로 해 부안의 반핵 투쟁이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특히 합의기구가 구성되는 것과 발맞춰 정부가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주도했던 핵심 실무책임자들을 문책할 것으로 알려져 부안 문제는 사실상 정부가 포기선언과 사과를 언제 할 것인가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부안 지역은 핵폐기장 유치를 독선적으로 결정한 김종규 군수에 대한 퇴진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1일 정부 한 고위 소식통은 “부안의 핵폐기장 유치가 백지화됨에 따라 정책이 표류하게 됐다”며 “부안 문제의 책임을 물어 조만간 실무책임자급에 대한 문책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지난 16일 이희범 산자부 장관이 “부안의 경우 현행절차에 따른 주민투표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발표하면서도 이후 기자회견에서 “부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상황이다. 이미 결정된 일을 두고 산자부가 허둥지둥하면서 분란을 일으키는 꼴이 된 셈이다.

이같은 정황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부안에서 핵폐기장 유치 주민투표는 어렵다”고 밝혀 이희범 장관의 발언을 뒤집었다.

산자부 역시 “주민들의 의사가 중요하다”면서도 이면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곧 이장관의 발언이 핵폐기장 유치를 열망하는 지역 정치인들을 달래기 위한 고육책에서 나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결국 정부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부안 주민의 화합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후속대책을 세우고 이와 동시에 ‘포기 선언’을 하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부안이 앞으로도 원전 추가건설과 관련해 주도적으로 논의에 참여할 것으로 보여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국가 에너지 정책의 전환으로 결실 맺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정부가 사실상 ‘부안 핵폐기장 완전 백지화’로 방향을 잡음에 따라 김종규 군수의 입지도 크게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민 여론은 이미 군수 퇴진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민소환제 도입 요구도 비등해지고 있다. 대책위 역시 향후 투쟁 방향을 자치 운동 강화로 잡고 있어 부안 투쟁은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대책위는 지난 16일 집회 결의문을 통해 “정부의 핵폐기장 추진일정이 사실상 무산됐음을 확인했다”며 “부안군민을 고통과 희생으로 몰아넣은 주범인 김종규 퇴진 투쟁을 더욱 강하게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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