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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부안전통시장 기획시리즈 1-신시장사거리 제일약초

“신시장 사거리는 여기여”
부안 시장에 터 잡은 지 올해로 만 32년이 됐다는 제일약초 이영숙 씨의 말이다.

그녀 말대로 부안상설시장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신시장이다. 신시장이 있으면 구시장이 있다. 구시장은 옛 국민은행 맞은편에 있다. 신시장이 생기면서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군청 쪽 동중리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애용하던 시장이다.
신시장내에서도 차가 다니는 사거리는 찾기 어렵다. 신시장 사거리 혹은 그녀의 가게 이름을 딴 제일약초 사거리가 유일하다.
이건 당귀, 이건 황기, 이건 하수오, 헛개나무, 오갈피, 느릅, 구지뽕 등등 비슷비슷해 구분하기 어려운 약초는 그녀의 인생 동반자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다. 하나를 팔면 아침을 해결하고 두 개를 팔면 저녁밥이 해결됐다. 돈 버는 재미가 그녀를 약초 박사로 만들었다. 이젠 냄새만 맡아도 뭔지 알고 뭐가 돈 되는지도 안다.
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마셔보라고 권한다. 은은하고 부담 없는 향이 어디에서도 마셔본 적 없는 차다. 30년 내공으로 만든 국내 유일무이한 제일약초표 차라고 그녀가 자랑한다.
태생이 김제였다는 그녀는 텃세를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누구의 사촌, 누구의 아들네미 등 사돈에 팔촌까지 알아야 물건이 팔렸다. 시골 시장이 어딜 가나 매한가지였겠지만 부안이 유달리 심했던 것 같았다고 소회한다.
가게를 찾는 손님 한명 한 명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 닫고 집에 다 도착 할 만하면 꼭 전화가 와~. 그래도 싫은 내색 한번 안했지. 손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 귀찮고 피곤해도 모두 반겼지” 그녀가 텃세를 넘어 시장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이유다.
“서른 일곱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벌써 스물여덟이 됐지 뭐여” 나이를 따로 묻지 않았지만 60을 넘었다.

그녀는 1남 1녀의 자녀를 뒀다. 시장에서 낳았고 시장에서 모두 길러냈다. “애들은 따로 한약같은 거 안 먹였어요. 사방이 약초라”.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듯 30년간 약초와 살아온 그녀가 풍월을 읊는다. “어디 아프면 뭘 먹고, 어디가 안 좋으면 뭘 먹고 하지 말고 평소에 좋은 물을 먹어야 잔병치레가 없지” 약초 더미 앞에서 주섬주섬 몇 가지를 들어 담더니 “이렇게 넣고 물을 끓여 마시면 겨울 내 감기는 없을 거여. 허라는 데로 히 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30년인데.
90년대 초반에는 장사가 괜찮았다고 한다. 매일매일 신협이며 마을금고에 일수 찍듯이 예금을 했다고 한다. 이쁜 수금원이 오면 하루에 5만원도 넣고 잘생긴 수금원이 오면 10만원도 넣고 벌리는 데로 돈을 모았다.
“대목에는 사람이 다니들 못혔어. 여기 사거리에 손님에 물건 나르는 사람에 물건 갖다 놓는사람에 어깨 넓은 사람은 댕기기 힘들었지. 그만큼 돈도 시글시글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지금 가게자리도 샀다. 건물주가 죽어도 안 판다고 했는데 몇 년전 돌아가시더니 아들이 팔기에 냉큼 사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신시장 사거리가 번듯해지길 희망한다.
야채시장 들어오는 곳이 예전부터 신시장 입구인데 어시장에도 하나 생기고 포목점 쪽에도 생겨 신시장 사거리라는 명성이 퇴색됐다고 한다.
더불어 신시장이 먹거리 위주로 변하거나 생선가게만 번성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 파는 마트 같은 시장을 원한다.
“딴디는 없고 시장이나 가야 있을랑가”하며 찾는 시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 바람대로 반듯한 신시장사거리에서 시장에나 가야 맡을 수 있는 건강한 약초향이 온 시장을 덮길 기대한다.

김종철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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