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이 화두입니다. 국민의 참정권 행사를 통해 구성된 대의기관이 민의를 외면할 뿐더러, 선출과정에서도 표심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정치의식은 성숙해졌고 시대정신도 변했으나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는  묵살돼 왔습니다. 현실 정치는 특정 정당의 독식과 양대 정당의 나눠먹기 탓에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공정한 경쟁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선거법 개혁이 우선되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본지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구 획정을 앞둔 지금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고 관철시킬 적기라는 점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특별기획을 연재합니다. 기꺼이 집필을 맡아주신 정치개혁 부안행동 고대경 씨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랍니다.

   편집자 말

12월 5일 국회앞에서 야3당과 4개의 원외정당,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글 싣는 순서

1. 1인당 GDP(국내총생산) 3만 불 시대,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한가?
2. 국회는 왜 바뀌지 않는가? 현행 선거제도는 무엇이 문제인가?
3.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꾸면 민의가 반영되는 국회를 만들 수 있을까?
4. 대한민국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능할까?

 

* 정계개편으로 갈 것인가, 선거제도개혁으로 갈 것인가

과거에도 대한민국에는 거대 양당 이외에 다양한 정당들이 있었다. 선거를 앞두면 ‘철새’정치인들이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탈당, 분당, 합당이 이루어졌다. ‘정계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의 이합집산이 행해졌고, 대한민국 정치사에는 수많은 이름의 정당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정책대결이 사라진 선거판에서 정치인들은 아무러치도 않게 여당, 야당을 옮겨 다녔다. 거대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 때문에 양당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되었고, 새로운 정치를 위한 신생정당은 제대로 자리 잡기 힘든 구조였다. 20대 국회에는 현재 과반이상을 차지하는 정당이 없고, 거대 양당 이외에도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정당이 존재하고 있다. 선거제도개혁이 안된다면 21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정계개편, 선거연합 등의 정치공학 적 이야기가 나올게 뻔하다.
하지만 촛불혁명 시기부터 시민사회단체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개혁을 주장해오고 있다. 문재인대통령도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약속했었다. 현재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모두 선거제도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다당 체제는 거대 양당에 실망한 국민들이 다른 선택을 한 결과이다. 국민의 희망을 걷어차고 다시 정당들의 이합집산을 도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양한 정당이 정책선거로 대결하는 모습을 대한민국에서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거대 양당이 결단을 내려할 시점

현재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당리당략에 치우쳐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1월 16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국회의장-5당 대표 간 만찬에서,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제1당은 차지할 의석을 지역구 당선자로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많이 가지기 어렵다”며, “그럴 경우 직능성,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의 영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제1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당 대표의 입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 나온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내 중진 그룹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더라도 100% 연동되지는 않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현재 여당이고 국회 제1당이며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상태이므로 과거의 선거제도로 선거를 치루는 것이 당연히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못하면 언젠가 보수정당의 1당 독재가 다시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 다수가 원하는 선거제도개혁에 맞설 경우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도 심하게 떨어져 21대 총선도 실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 이전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었다. 과거 일본이 중대선거구제와 의원내각제를 이용해 자민당 장기집권을 이루었던 것을 모델로 해서, 대한민국에서도 의원내각제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려고 했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 상황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다른 정당에 패권을 넘겨주지 않으면서 제2당으로 양당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 의원마다 셈법이 각기 다르다. 영남지역 의원들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지만, 수도권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2,3등으로라도 당선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도개혁에 대한 당론을 정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살펴본 바와 같이 중대선거구제는 일본에서도 이미 실패한 제도로 여겨지며 학계에서는 이제 거의 논의도 되지 않는 제도이다. 정당에 유리한 제도만을 고집할 경우 국민의 지지도는 점점 떨어질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 현직 국회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동의할 것인가

시민단체들은 정당이나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를 떠나 대한민국 의회정치의 발전을 위해 선거제도개혁을 주장한다. 하지만 선거제도는 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해야만 바뀔 수 있다.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법안이 발의되고 국회의원 과반이 찬성해야 선거제도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 '자기 보존의 철칙'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었다. 현직 국회의원들은 현 제도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에 여간해선 스스로 그 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례대표의석을 늘리기 위해 지역구의석을 대폭 줄이는 안은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역구의석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고 비례대표의석을 100~120석으로 늘리면 득표율과 국회의석비율을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표.1) 국회에 발의된 선거법 개정안들과 중앙선관위의 권고안 비교 정;정의당, 민;더불어민주당, 바;바른미래당 1) 인구 14만 명당 1석, 2) 인구 15만 명당 1석

*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숫자를 늘려야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안철수 후보는 국회의원 정원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 정원을 100석 정도 줄이면 매년 2000~400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들로부터 심적인 동의를 얻은 주장이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10월 20-23일 실시한 전국 1,000명 웹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72%가 현행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과반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한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여론이 훨씬 높다.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사고해보면 국회의원의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학계에서도 의원 수 확대에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국회의원들은 '지역' 대표성만 갖는 게 아니라 '직능' 대표성도 가지므로, 사회가 세분화될수록 의원수를 늘리는 게 맞다는 이야기다. 유럽 국가들에 비해 대한민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가 훨씬 많다(의원 1인당 17만 명 -그림1 참조). 민주평화당 정동영대표와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대표의 주장은, 국회의원의 숫자가 줄어들면 그들의 특권과 귀족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고, 숫자가 늘어나면 특권도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측면을 보더라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현을 위해 의원수를 늘리는 게 현실적이다. 19대 국회에서 20대 총선을 위한 선거구 조정을 하면서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과적으로 지역구의석은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어나고, 비례대표의석은 54석에서 47석으로 오히려 줄로 말았다. 심상정의원의 발의안은 지역구 240석, 비례대표의석 120석으로 총 360석을 제안하고 있으며, 박주민의원의 발의안은 인구14만 명 당 지역구 1석, 지역구의석의 반을 비례대표의석으로 제안한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에서 논의되면서 구체적인 숫자는 조정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국회를 불신하는 국민의 여론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수 있겠으나, 국회의 특권을 줄이면 된다. 현재 1억 4천 7백만 원 정도하는 국회의원이 연봉을 줄이고, 개인보좌진을 현 9명에서 5~6명 정도로 줄이면 된다. 업무추진비 등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고,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모든 예산에 대해 정보공개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6300억 원 대의 국회예산으로 360~380명의 국회의원을 충분히 쓸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산 증액 없이 국회의원의 특권은 줄이고 숫자는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1) 주요국 의원 1인당 인구수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참고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 선거제도개혁은 민주주의의 시작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선거제도를 개혁한다고 국회가 자연스럽게 정상화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를 가지고는 절대로 대한민국 국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고 발판이다. 선거제도개혁 이후에 시도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개선과 정치문화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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