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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역사기행② -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 된다"
학생들이 5·18 자유공원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우리는 부안에서 광주로 떠났다. 맨 처음 도착지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었다. 나는 광주를 이번까지 합치면 3번을 가봤다. 처음엔 부모님과 함께, 두 번째는 학교에서 가보았다. 두 번이나 광주에 다녀왔지만, 이번 3번째에 광주에 갈 땐 감정이 너무나 달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난 이번에 광주로 견학을 가기 전에 학교에서 배부해 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어 봤다. 그 책을 읽으니 내가 알고 있던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1980년 당시 5월의 광주의 모습과 희생하신 많은 시민군들과 무고하게 희생되신 시민들을 생각하니 그분들이 수고에 너무 감사하고, 한편으론 정말 죄송스러웠다. 또, 정말 아직까지 철면피가 따로 없고, 죄책감을 전혀 못 느끼는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신군부 세력들을 보면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뼈 저리는 고통이 있는 고문을 당한 당시 시민분들을 보며 군인들, 그들은 정말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같았고, 눈앞에 보이는 권력 찾기에만 눈이 멀어 이성을 상실한 사람 같았다.
처음 도착지인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여러 층의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1층에는 항쟁이란 주제로 전시실을 꾸며 놓았는데 5월의 항쟁을 시간대 별로 구성하여 역사의 사실성에 중점을 두고 재현하여 5월 항쟁의 발발에서 지금 현재까지를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었다. 1층(항쟁)전시관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레였다. 이 수레는 당시 첫 희생자들을 운반하는 데에 쓰였다고 하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고 당시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전시관 바닥을 도로로 표현하여 그 도로 위에 여러 신발들이 나뒹굴고 최루탄을 터트린 자국들이 있었는데 나뒹구는 신발들을 보니 정말 슬펐다. 이 신발들이 군인들에 맞선 시민군들이 군인들이 쏘는 총과 최루탄을 피해 도망치다가 벗겨졌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섭기도 했고 슬픔이 몰려왔다. 또 다른 전시층을 둘러보았는데, 여성의 항쟁운동을 비롯하여 여성 시민들의 주먹밥과 물품 나눔 등의 나눔과 배려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화났었던 점이 있었는데 바로 정치권력이 언론, 출판의 자유를 막은 것이었다. 제 구실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언론과 출판이 자유롭지 못해 이 광주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 점, 특히 우리나라 기자들이 아닌 외신이 이 광주 상황을 알렸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며, 외신 기자에게 고마웠다. 사실 이 언론, 출판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했던 것은 기자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기득권 세력인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내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이 사건을 보니 언론과 출판의 힘이 정말 막강하긴 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고, 1980년 5월 당시는 인권도 없어 힘없이 우리 국민이 희생만 당했다고 느꼈다. 
두 번째로 간 5·18 자유공원에서는 더 큰 분노를 일으켰다. 5·18 자유공원은 민주화운동 당시 정권 찬탈을 기도하던 일부 정치군인들의 강경 진압에 맞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이 구금되어 군사 재판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자유공원에선 헌병대 중대 내무반을 둘러봤다. 중대 내무반은 헌병들의 일상생활과 잠을 자는 휴식공간이지만 실제론 수사관들이 잡혀온 시민군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구타를 한 곳이다. 흔히들 이곳을 헌병들의 휴식공간이 아닌 시민들을 때려잡는 인간 도살장이라고 표현했던 것에서 수사관(헌병)들의 잔인함을 느꼈다. 또 헌병대 본부 사무실에도 들렀는데, 이곳은 계엄군에 끌려온 시민들을 조사했던 곳이라고 한다. 수사관들은 조사하기 전에 무조건 진압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여 시민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더 잔인했다고 느낀 건 바로 옆에서 구타당하여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시민군 옆에 다음 순서에 조사를 받을 여러 명을 데리고 와 그것을 지켜보게끔 하여, 공포로 그들이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 허위 자백을 하게끔 정서적으로도 고문을 시행했다는 것이었다.
영장과 법정도 둘러보았다. 영창은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탈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햇던 분들이 구금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선 한 공간에 150명까지 수용되어 생활했다. 하루 16시간의 정좌자세 수감생활과 가혹한 구타, 감시 등 인권을 유린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소년이 온다’ 에서 읽은 진수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이어서 책의 내용과 비교하며 상상할 수도 있었다. 직접 영창에 들어가 보니 당시 시민군들의 인권은 강력하게 박탈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법정은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의 군사재판을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법정에 재현된 마네킹들을 보았는데 재판관 1명과 법조관 1명, 군인과 검사 3명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전부 다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심지어 재판을 받는 구속자(시민군)들 옆에는 헌병들이 배치되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으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 법정을 보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변호인이다. 변호인이라는 영화 또한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그 중 법정에서 재판받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정말 인상 깊게 봤었는데 이렇게 내가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의 심판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감정도 새로웠고, 영화의 장면과 대조되니 괜히 그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국립 5·18 민주묘지를 다녀왔다. 처음에 입장할 때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발맞추어 들어갔다. 먼저 고인이 되신 5·18 민주유공자의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를 둘러보았는데 정말 수백 개 고인의 사진들이 모셔져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그분들의 모습은 정말 영웅 같았다. 유영봉안소에서의 감정을 뒤로 하고 민주유공자 분들의 묘역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희생자 2분이 있는데 한 분이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희생자다. 초등학교 1학년, 8살이니까 군인이 멋있게만 보이고 광장엔 사람들이 많으니 호기심에 따라갔을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그는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그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셨다. 또, 당시 고3이었던 여학생은 중간고사를 보고 길을 가던 중에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있어 헌혈을 해주라는 병원 방송을 듣고 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오던 중 47분 만에 헬리콥터에서 발사된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헌혈을 하고 나와 총에 맞아 희생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47분이었다. 죽기 전까지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헌혈했다는데 정말 마음이 바른 분이어서 특히나 이분의 사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오늘 광주로 견학을 가게 된 덕분에 수많은 감정을 느꼈고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저항한 시민군들의 수고와 민주주의 정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때 당시 광주에서 살고 있었다면 죄송스럽지만 나는 과연 어땠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새로운 개혁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정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따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제발 그때 당시 기득권 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 신군부세력과, 평범한 광주시민들을 희생시킨 계엄군은 진실한 반성과 그 대가를 치렀으면 하고, 현재와 미래의 학생들이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배워 이것이 절대 잊혀지지 않는 역사였으면 좋겠고, 이런 일들이 절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1980년 당시 5월의 광주 시민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서림고 1학년 정연우

 

 

 

 

 

 

5·18 민주묘지에서 숙연히 참배하고 있는 학생들.

5·18 민주화운동 역사기행

2018년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 89주년을 맞아 5.18 민주화운동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놀러갈 땐 늘 화려하게 입고, 화려한 악세사리로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사전에 읽었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동호’를 만나러 간다니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처음 간 곳은 광주광역시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었다. 우리가 여름방학 동안 세계시민교육을 받으면서 모의 총회까지 했던,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한 곳이라 했는데 그 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그곳을 둘러보았다. 그곳을 둘러 보다 보니 그 당시 광주의 상황이 한눈에 읽히고,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참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가치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1980년 봄,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이어졌고 신군부 세력은 이에 맞서 5·17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광주에서는 비상계엄확대 소식을 듣고 18일 아침, 전남대 교문 앞에 대학생 약 200여명이 모였는데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광주 도심지로 장소를 옮겨 시위를 벌였고 공수부대는 곤봉과 대검으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군인들의 총격으로 시민들의 피가 거리에 흩뿌려졌고, 상무관에서는 희생자 가족의 통곡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서로 나눴고 서로를 믿었다. 순간 나는 어린 ‘동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호’가 왜 이곳을 떠날 수 없었을까? ‘은숙 누나, 선주 누나’는 왜 떠날 수 없었을까? 그 당시 마음은 어땠을까? 등에 대한 물음은 ‘대동 세상’이라는 문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시장의 상인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었고, 적십자병원에 피가 모자라면 시민들은 헌혈을 하여 피를 나눴다. 이것은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닌, 다 같이 나누면서 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복잡한 상황에서 광주의 은행은 어느 한 지점도 털리지 않았고, 도난당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광주에서 군인들은 시민들을 빨갱이, 폭도라고 칭하며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어린 ‘동호’도 ‘정대’도 여기에서 그렇게 죽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한숨만 나왔다.
발길을 옮겨 5·18 자유 공원을 들러 5·18 민주묘지에 갔다. 이곳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우리 모두는 숨죽였고 어느 누구 하나 웃고 떠들 수 없었다. 이곳에는 어린 동호와 같이 5·18민주화운동을 하다 희생당하신 분들이 잠들어계셨기에 더욱 그랬다. 이곳의 하늘은 맑았고, 새들이 나무 사이사이를 날아다녔다. 그때의 5월과는 다르게 아주 평화로웠다. 그래서 더욱 슬퍼졌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내 맘을 아프게 했던 여러 광주시민들이 잠들어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체증이 답답한 한숨으로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한쪽에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무덤을 보는 순간 설움이 북받쳤다. 군인들이 어딘가에 묻어버렸거나 태워버려 시신을 찾을 수 없다는 해설사의 말이 믿기질 않았다.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고,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죽어 나갔고 고통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자신들에 대한 심판을 미루고만 있다. 그들은 하루 빨리 희생된 사람들에게 사죄드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들을 처벌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호’의 맺힌 한을 하루 빨리 풀어주고 싶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가을의 햇살을 ‘동호’가 저 하늘에서 ‘정대랑, 은숙 누나랑, 선주누나랑’ 함께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이번 5·18민주화운동 역사기행을 되돌아보니 사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고 떠났기에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질 수 있음을, 그러다 보면 역사도 잊혀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동호의 아픔을 느끼며 광주의 아픔을 더 가슴으로 품을 수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의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소년이 온다」 같은 소설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동호만은, 그 당시 광주시민들의 마음만은 나는 잊지 않겠다.

부안여고 1학년 이민선

 

우병길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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