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 종주는 2차례 있었으나 2차례 모두 무박산행이라서 뭔가를 성취했다는 생각보다는 고통스럽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유를 갖기 위해 1박을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간편한 게 나의 취향이므로 봉정암에서 숙식을 하기로 하였다.

봉정암에서의 숙식은 대피소에서의 숙식에 비해 여러모로 불편하긴 하지만 철야기도를 한다고 하면 10,000원으로 1박에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간편해서 참 좋다.(메뉴는 밥, 미역국, 단무지에 고춧가루 무침) 10,000만원으로 누릴 수 이만한 행복이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지난 11월 12일 부안에서 일곱 시 오십분 강남행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열시 오십분, 서둘러 동서울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점심을 해결한 후 12시행 백담사행 차에 올랐다.

용대리에 도착한 시간이 2시 5분, 다시 700미터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백담사 셔틀버스 승강장으로 이동 셔틀버스를 타려 했으나 40여분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걷기 시작, 영시암 수렴동대피소를 지나 봉정암에 도착한 시간이 여섯시 쯤 제법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비록 낙엽이 거의 다 저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아쉬운 쓸쓸한 산길이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낙차가 크게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용소, 용아폭포에서 흘러내리는 한 폭의 물줄기는 나름 운치가 있었다.

봉정암은 해발 1,244미터에 위치한 기도도량으로 산세가 험악한 바위로 둘러쌓여 기도발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어 사시사철 불신자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은 지리산에 있는 1,400미터에 위치한 법계사로 6.25때 불타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81년 준공되었는데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불공을 드리고 싶다.

사찰에서의 숙식은 철야기도를 전제로 한 예약자에게만 허용된다고 하였다. 갑작스런 산행 결정으로 숙식 예약을 하지 않아 조금은 찜찜하긴 했다. 

그러나 예약하지 않았다고 설마 깊는 산골에서 밤중에 내 쫓기야 하겠냐는 심정으로 길을 잘못 들어 하룻밤 묵어 갈까 한다고 했더니 이름만 묻고 등산객한테는 숙식비를 받지 않는다며 우려와는 달리 너무도 쉽게 숙식이 해결되었다.

담백하면서 입맛에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 2찬의 공양을 한숨에 치우고 초저녁부터 누워 잠을 청하니 잠도 오지 않고 숙식비도 지불하지 않아 멋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돗발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자 누구보다도 자녀들에 대한 간절한 생각에 법당에 들러 촛불 3개를 밝히고 스님의 염불소리에 맞춰 108배를 올렸다. 빡빡한 일정으로 몸이 녹초가 된 상태에서 108배를 올린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잠자리는 평일이라서 널널한 편이었지만 가로 45cm 세로 90cm 크기의 약간의 두께가 있는 솜이불 3개로 베고 덮고 자기에는 너무도 허전하여 밤새 뒤척이다가 세시에 종소리에 깨어 법당에 올라가 조용히 앉아 스님의 염불소리에 귀 기울이며 명상에 잠기는 것은 생각지 않은 감동이었다.

새벽기도를 간단히 마치고 계곡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 일체 세면용품이 일절 허용되지 않은 맨물로 세면을 하고 2찬 조식 후 여섯시 반에 공룡능선으로 향했다.

동행을 구하지 못한 호락질 산행으로 혹시 동행할 사람이 있나 살피는 순간 50대 중반의 체격이 좋고 미음 씀씀이가 넉넉해 보이는 도반을 만나게 되었다. 봉정암에서 4km 지점에 위치한 수렴동 대피소에서 숙식을 하고 다섯시에 출발하여 봉정암에서 잠깐 쉬려고 들렸다고 한다. 

등산객이 많지 않은 시간 반가운 마음으로 목적지를 물으니 백담사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 공룡능선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 다시 갈 거라고 했다. 어둠이 가시기 전인 여섯시 반에 봉정암에서 소청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살얼음 빙판길로 혼자 갔더라면 위험했음은 물론 적적했을 것이다.

마등령까지 함께 가게 된 도반은 노희찬 의원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정의당에 입당하여 당비를 내고 있다는 수도권에서 목회활동을 한다는 진보적인 목사님으로 타종교를 포용할 줄 아는 호감을 주는 분이었다. 

목사라는 직분은 평소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별 휴가를 내서 산에 가끔 다닌다고 하였는데 마등령까지 다섯 시간 동안 종교는 물론 종교 외적인 공감이 가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공룡능선 종주코스는 5.1km로 다섯 개의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하는 쉽지 않은 등산로이다. 돌 바닥은 가랑비가 살짝 얼어 미끄럽지, 다리는 팍팍하지, 숨은 목까지 차오르지, 땀은 났다 식었다 반복하면서 몸이 오싹하였지만 등반을 마친 후의 느낌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마등령에서 11시에 동행자와 헤어지면서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가 어찌나 발걸음을 재촉하는지 신흥사에 도착하니 1시가 넘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행의 길이었는지……

 이번 산행 역시 타이트한 일정으로 몸도 고달프고 시기를 놓쳐 수려한 설악산의 단풍을 만끽하진 못했지만 호락질 산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실컷 누렸다. 

산은 언제나 그리고 혼자와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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