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벼농사를 시작하게 된 건 약 1만년전 부터였다.
약 1만년전 아시아 대륙 인도차이나반도부터 시작된 벼농사는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발달되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삼한시대부터 쌀을 식량으로 사용해 왔고 삼국시대에서는 벼를 주식으로 사용해 왔으며 벽골제와 같은 수리시설도 이때부터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 이르러서는 시비법과 이앙법 등의 벼 재배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였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농기구 개량, 품종 다양화, 경지정리 등 생산기반 확충이 이루어져 쌀의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다.
지금이야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산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중세에 이르기까지 곡식은  국가 산업의 전부였고  백성의 삶이었으며 민심의 척도였다. 풍작이 이루어지면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임금은 성군으로 칭송되었으며 국력은 더욱 강건해졌다. 반면 흉작이 이어지면 민심은 흉흉해지고 도처에서 도적이 들끓었으며 권력자는 정변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임금은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선농단에서 그해 풍년을 기원하였고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수시로 기우제를 지내며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달과 품종의 개발, 수리시설 보급 등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는 지역축제의 프로그램에서나 간간히 볼 수 있는 이벤트가 되었다.  요 몇해는 지나친 풍작으로 오히려 농민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수요를 넘어선 쌀 생산은 쌀값 폭락으로 이어져 쌀값이 생산단가에도 못 미칠 지경에 이르렀고 게다가 FTA, WTO 등 국제적 개방 추세에 이루어진 쌀 수입은 장기적 쌀값 전망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전망 속에서 결국 해결책은 쌀의 경쟁력 강화와 생산품종 다변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수출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쌀 농사의 규모화로 생산원가를 낮추는 한편 대규모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는 유기농법과 기능성 쌀 생산 등으로 쌀 품질의 고급화와 차별화 양면 전략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가 85% 이고 쌀을 선택하는 기준은 영양과 맛이라는 결과도 있다.
품종도 다변화 하고 생산량도 조절해야 한다. 쌀생산 일변도에서 탈피해 쌀 생산면적을 과감히 축소시키고 수입에 의존하는 잡곡은 생산단지를 확대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년 기준 쌀을 제외한 곡물 자급율은 평균 23%밖에 되지 않고 밀과 참깨 옥수수 등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서인지 정부에서는 전국 쌀 생산면적을 점차 축소해 쌀 생산량을 올해 390만톤에서 내년에는 380만톤으로 축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다 수확 품종 재배는 지양하고 고품질 생산을 장려하는 한편 전환된 농경지에는 타 작물의 생산을 유도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남는 것은 생산을 줄이고 모자라는 것은 생산을 늘리는게 시장의 원리이며, 국내에서 모자라는 것은 안으로 들이고 남아도는 것은 밖으로 내보내는게 국제질서이다.
시장개방의 시대에 수입 농산품이 밀려오는 지금 우리 쌀, 우리 농산물도 수출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수출을 위한 주변 시장 여건은 갖추어져 있다. 바로 옆에 1억3,000만명의 잘사는 일본이 있고, 15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는 중산층이 폭넓게 형성돼 있으며, 아세안 등 신흥시장도 개척의 여지가 크다.
농업은 생산의 영역이 아닌 생존의 영역이고 우리에게 쌀은 생산품이 아닌 생존품이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라도 농업과 쌀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쌀은 생산과잉과 소비부진, 가격하락으로 고전해 왔지만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으로 전

체 농업생산액의 14%, 전체 농가의 56%를 차지하는 만큼 중요한 산업이다.
인력과 자금의 투자, 효율적 정책 입안으로 우리의 주식인 쌀이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제값을받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