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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70-시 ‘귀향시초’와 부세부세한 얼굴들③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이 1952년 4월에 쓴 귀향시초(歸鄕詩抄)라는 시가 있다. 한국전쟁 후의 부안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그려놓았다. 시에는 번호가 붙어 5번까지 있는데 여기서는 1번과 4번을 소개한다.

1
껌도 양과자도 쌀밥도 모르고 살아가는 마을 아이들은 날만 새면 / 띠뿌리와 칡뿌리를 직씬직씬 깨물어서 이빨이 사뭇 누렇고 몸에 젖은  / 띠뿌리랑 칙뿌리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쏘다니는 것이 퍽은 귀엽고도  / 안쓰러워 죽겠읍데다.

4
술회사 앞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수대며 자배기를 들고 나와서 쇠자라기와  / 술찌겅이를 얻어가야 하기에 부세부세한 얼굴들을 서로 쳐다보면서 차표 사듯  / 늘어서서 꼭 잠겨 있는 술회사문이 열리기를 천당같이 기두리고 있읍데다.

 
시인은 미술에서 밑그림을 그리듯 시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치 눈으로 보듯 현실을 그렸다. 시에는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가 보인다. 직씬직씬 · 부세부세 · 모대기모대기 · 찌웃찌웃 · 옹개옹개 같은 사투리가 시의 운율과 친근감을 더한다.
  시의 출발은 한국전쟁 후의 배고픔이다. 아이들은 띠뿌리와 칡뿌리를 깨물고 다녔지만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었다. 당시는 띠뿌리(풀뿌리)와 송피(소나무껍질)와 너물(나물)과 술찌꺼기로 끼니를 때웠다. 이제는 껍질을 벗길만한 소나무도 없는 메마른 고장이 되었으니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걱정이다. 쌀겨에는 쑥을 넣어 먹는 것이 좋다며 배고픔을 넘길 정보도 서로 교환한다.
  귀향시초의 소재가 된 ‘술회사’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지금의 상원아파트 앞에 있는 부안양조장이다. 일본인 카와노가 운영하였던 서림양조장이었고 여기서는 약주와 소주와 막걸리를 만들었다. 한국전쟁 후에는 핏기 없이 부세부세한 얼굴의 아낙네들이 새벽 일찍 나와서 술회사 앞에 줄을 섰다. 이들은 수대와 자배기를 들고 쇠자라기와 술찌겅이를 얻으려 하였다. 술을 만들면 나오는 이들 술찌껑이는 평시에는 돼지먹이였다.
  전쟁 뒤라서 먹을 것이 없는데 이곳에서 술찌거기라도 얻으면 가족들의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술회사 앞에서 기다린다. 이런 술찌꺼기를 얻어다 먹고 온 가족이 술에 취해 대낮에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는 웃지 못 할 얘기도 전한다.
  석정은 이들의 절실함을 ‘술회사 문이 열리기를 천당같이 기두린다’고 했다. 이들이 천당같이 기다린 것은 천국에 가겠다는 소박한 신앙이 아니라 배가 고프니 우선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다는 절박함이다.
  술회사는 서림양조장에서 부안양조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주인도 바뀌었다. 소개한 사진은 2001년도 찍었다. 당시만 해도 양조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제 강점기의 건물 형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양조장을 정비하면서 옛 건물은 모두 사라졌다. 한 동의 건물이라도 상징적으로 남겨놨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 양조장이 ‘귀향시초’의 배경이라는 안내 간판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곳에 들러 시와 시인을 얘기하고, 전쟁의 현실을 온몸으로 안고 살아갔던 부세부세한 부안 사람들의 얘기 속으로 들어간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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