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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68-적벽강의 가을은 여전히 쓸쓸하지만…

지난 10월 18일에 적벽강과 수성당을 찾았다. 수성당의 메밀과 코스모스도 이제 힘을 잃은 채 작아지는 계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뜸하다. 격포에 오랫동안 살았다는 분은 이번에 처음으로 수성당과 적벽강을 찾았다는 얘기를 한다. 격포하면 쉽게 채석강을 생각하는데, 전에도 그랬을까? 라는 질문 속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1931년 9월13일 부터 며칠 동안 동아일보에 광고가 떴다. ‘변산탐승단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이 찾는 탐승지는 내소사, 개암사, 우금석굴, 월명암, 직소룡, 채석강, 적벽강, 서물암이다. 주최는 동아일보 김제지국이고 후원은 김제안전자동차부 이다. 예나 지금이나 후원은 기업이다. 안전자동차 회사는 승객들이 차량을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차원에서 후원자로 나섰을 것이다.
가람 이병기의 해산유기(海山遊記) 마지막 글은 1935년 9월 17일에 신문에 게재된다.
채석강에는 둥글둥글한 돌들이 수두룩했다. 채석을 본 후에 더 돌아가면 수성당 또 돌아가면 적벽강이라 하나 그건 아즉 남겨두고 우리는 예서 돌아서버렸다.
이병기는 어떤 이유에선지 채석강을 본 후에 한달음이면 볼 수 있는 수성당과 적벽강을 보지 않고 격포를 떠났다.
소설가 이근영은 1938년 7월 초에 변산 일대를 탐방하고 ‘변산반도탐승기’를 신문에 기고한다. 그는 조수가 빠진 변산해수욕장에서 걷기 시작하여 적벽강과 채석강까지 갔는데 고기잡이 어망과 독살이 군데군데 보였다고 했다. 적벽강을 먼저 들르고 나중에 채석강으로 향한다. 그러나 적벽강에 대한 소회 보다는 채석강에 대한 얘기를 길게 써 놓았다.

사람들은 적벽강이나 채석강이 크게 다르지 않고 채석을 봤다면 적벽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듯하다. 적벽에는 채석처럼 지층이 드러나는 책바위가 크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적벽에는 채석과는 다른 모양의 돌에다 세월처럼 여러 모양의 무늬를 남겼다.
격포 바다는 위도까지를 포함해서 큰 호수였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호수에 퇴적층이 형성되었다. 화산활동이 일어나면서 뜨거운 마그마가 격렬하게 끓어올라 적벽강의 수분 함량이 높은 퇴적층에 유문암과 검은 이암이 뒤섞이면서 암석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암석 중에 페퍼라이트는 붉다. 적벽강(赤壁江)의 적벽(赤壁)은 중국의 시인 소동파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붉다. 후추암이라고도 불리는 이 암석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퇴적층에 있는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형성된 돌개구멍도 있다. 주상절리는 길이는 작지만 여러 곳에서 보인다. 이외에도 연흔구조나 다양한 단층을 관찰할 수 있다.

적벽강은 다양한 암석뿐만 아니라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죽막동과 여울굴, 당굴에 살고 있다는 칠산바다를 지키는 개양할미 이야기 등.
적벽강은 긴 시간동안 파도가 빚어낸 위대한 자연의 소산이다. 함께 간 분들에게 예쁘다고 적벽의 돌을 함부로 가져가지 말라고 당부도 했다. 7,000만 년 전에 태어나신 선조(?)를 너무 가볍게 대하지 않느냐는 농담을 던지면서 말이다.
가을 적벽강은 사람이 찾지 않아 쓸쓸하다. 그러나 적벽은 수천만 년의 고독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내어놓고 하루도 쉬지 않고 파도에 담금질했으니 여전히 위대하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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