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나를 이끄는 발

“‘보치아’라는 경기를 아시나요?”
레슬링 유망주에서 보치아 경기 국가대표를 꿈꾸는 김남석 선수가 묻는다.
그는 올해로 40살이 된 노총각이다.
그가 보치아 경기 선수가 된 것은 20년 전 사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여 왔던 그는 중학교 때 레슬링을 접한 후 능력을 인정받아 레슬링 특기자로 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그가 바라던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몸이 움직이지 않더군요”
친구들과 잠깐의 놀이에 목을 다친 그는 하루아침에 목 아래가 마비된 레슬링 선수가 된 것이다.
“보치아, 그거 컬링과 비슷해 보이던데요 맞나요”
“네 잘 보셨네요 생소하지만 컬링과 비교하면 낯설지는 않을 거예요”
그는 자신이 낙천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좌절의 시간도 있었지만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년간의 병원 치료 후 3~4년을 집에만 있었다는 그는 부안종합사회복지관 문을 두드리면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어려움 없이 사회에 적응해 오던 중 아버지가 휠체어와 함께 차에 탈 수 있는 리프트 차량을 구입하면서 다시 대학에 복학하게 됐고 그곳에서 ‘보치아’를 만나게 된다.
운동은 계속하고 싶은데 워낙 중증 장애라 할 만한 운동을 찾을 수 없었다는 그는 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보치아’ 경기를 보고 ‘이것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컬링은 정해진 곳에 자신의 얼음을 가까이 가져다 놓은 것이지만 보치아는 내가 원하는 곳에 흰색의 목적구를 던지고 그 공에 가깝게 자신의 공을 던져야 해요”
그는 가끔 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날 때가 힘들다고 한다. 당시 친구와 선배들이 감독과 코치 생활을 하고 있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어딘가에서 운동하며 후배들을 키우고 있었을 자신을 그려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비롯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보치아’는 손을 사용하는 경기방식과 손으로 던질 수 없는 경우 홈통을 이용한 경기방식으로 나뉜다.
그가 뛰는 홈통 종목은 세계랭킹 1,2,3위가 모두 한국인으로 패럴림픽 8회 연속 우승해 32년간 왕좌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써가고 있다.
“‘보치아’로 이번 전국체전에서 꼭 메달을 따내겠습니다”
그가 선수로 나선 지 3년이 채 안됐지만 최근 열린 전국대회에서 5등을 거머쥐는 등 단기간에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메달을 획득하겠다는 말을 허튼 소리로 들어선 안 된다.
그는 부안군장애인체육관 건립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매일같이 정읍에 있는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오는 것이 불편한 탓도 있지만 부안에서 연습하면 더 좋은 기량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이 그렇게 좋아요?”
“운동을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잊어요. 내가 걷고 있는지, 뛰고 있는지, 날고 있는지, 신체의 장애뿐만 아니라 마음속 장애도 없어지죠. 운동은 나를 이끄는 발이나 다름 없어요” 눈을 반짝이면 답한다.
“말도 재치 있게 잘하는데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소개 좀 해주세요. 장가가게~”
“남석 씨가 보치아 국가대표가 되면 구하던 만들던 꼭 소개해 줄게요. 약속합시다”
자신도 없는 장담을 늘어놓고 덜컥 약속까지 한 후 자리를 나서자 그가 말한다 “저는 국가 대표보다 패럴림픽 부안군 제1호 메달리스트가 될 거예요. 저도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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