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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문화인·평화인에 대한 뒤늦은 추모
  • 황재근 (전 부안독립신문 기자)
  • 승인 2018.10.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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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신문이라하면 시의성이 생명이다. 칼럼은 널리 공유할만한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 원고의 주제를 고민하다 이 두 가지를 다 지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픈 깜냥으로 잘 모르는 주제를 건드리기보다는 시기는 늦었지만 오래 생각해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지난 7월 노회찬 의원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실감나지 않는 그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그의 장례가 치러지기까지 1주일여의 시간동안 ‘아,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셨구나’하는 쓰라린 자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나서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큰 상실감을 느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지금의 의식적 정체성을 형성한 대학시절, 민주노동당의 돌풍과 함께 그가 나타났다. 지금도 회자되는 삼겹살 불판론 이래로 수많은 어록들을 남기며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원가입을 독려하면서 “민주노동당 당원은 5만번대 이전 당원과 그 이후 당원으로 나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예언을 틀렸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당 가입을 결심했고 그 이후로 대부분의 시간을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고 있다. 나에게 그는 진보정당이라는 (국내에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상징이었다. 그간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대중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대체로 올곧고, 강인하고, 뾰족한 느낌이었다면 그의 메시지는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그것이 곧 진보정당과 기존 사회운동과의 차이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가 내 삶에 더 깊이 들어온 것은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통해서였다. 한주도 빼지 않고 그 방송을 들었으니 웬만한 지인들보다 더 자주 그의 목소리를 들은 셈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그는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접근했으며 열린자세로 경청했고 신중하게 말했다. 정당의 스피커로서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일면이었다.
그의 업적과 삶의 이력, 숨겨진 일화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매체들이 다룬 바 있다. 특히 그의 언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추억을 떠올린다. 그의 말이 빛나는 이유는 풍자 대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풍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풍자에는 사회적 약자를 빗댄 조롱도 없었고, 애매한 대상을 싸잡아 말하는 편견도 없었다. 그가 휘두르는 풍자의 칼은 한 번도 약자와 대중을 향한 적이 없다. 오직 소수의 강자와 가진 자들만이 대상이 됐다. 내가 만날 일이 없는 그분들의 심사야 알바 아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죄책감 없이 웃을 수 있는 풍자였다. 그의 비유에는 고사부터 현대 신조어까지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그 탁월한 문화적 식견은 편식 없이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시간들 덕분에 가능했다. 그의 결단은 단호하지만 그 전에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유연했다.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지 않고도 감히 이렇게 평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수많은 말과 글 덕분이다. 그처럼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그와 같은 반열에 올릴만한 풍자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그의 말과 글에는 그가 쌓아온 시간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모두 녹아있었다. 글쓰는 일을 종종하는 입장에서 그래서 더 깊이 존경했다.
노회찬과 견줄만한 사람이 언젠가는 다시 진보정치계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쓰는 말과 글은 노회찬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에, 아마 나는 더 노회찬이 그리워질 것 같다. 지금도 큰 사건이 터지면 ‘노회찬 의원은 뭐라고 논평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그의 선택이 더 원망스럽다. 그렇게 마침표가 찍혀서는 안 되는 삶이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떠난 이를 탓해 무엇할까. 그가 남긴 말과 글을 벗 삼아, 스승삼아 다만 오랫동안 그리워할 뿐이다.

황재근 (전 부안독립신문 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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