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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67-고성산성, 신석정의 가을산에서 ①

석정은 깊은 가을로 온다. 백일홍, 꽃무릇과 구절초, 코스모스와 함께 온다. 올 가을에 석정이 묻힌 고성산성을 찾으면서 본 꽃들이다. 9월에 본 꽃은 백일홍과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나무 사이에 무리지어 피어서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만날 수 있었다. 10월에 찾았을 때는 구절초와 코스모스가 반긴다.
  시인은 꽃을 좋아했다. 봄에는 지인들과 함께 가까운 산을 찾아서 ‘꽃 싸움’을 했다. 꽃쌈이란 산에 간 사람들이 흩어져서 시간을 정해 따낸 꽃잎을 종류대로 세면서 누가 많이 땄는지 비교해 보는 놀이다. 석정은 이 꽃쌈에서 첫째를 하곤 했다.
  고성산성(古城山城)을 찾을 때마다 자주 뵙는 분은 임기태 부안군의회 전 의장이다. 행안면장을 할 때부터 이곳 고성산성에 주목하여 구절초를 심고 가꾸는 일을 했다고 한다. 공직을 떠난 이후에 살펴보니 관심 두는 사람이 없어서 영 형편없어졌다고 애석해했다. 구절초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정읍 산내의 구절초 축제보다 이곳에서 먼저 구절초를 심기 시작했노라고 덧붙인다.
  이 산성 안에 신씨 선산이 있고 이곳에 석정은 몸을 누이고 있다. 지금도 토성(土城)이 남아 있어 성터 위로 한 바퀴 걸어 보니 이만한 토성이 남아 있기가 쉽지 않은데 라는 생각을 해봤다. 역사가들은 이곳이 조선 초까지만 해도 부령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해석한다. 태종 때 부령과 보안이 합쳐져 부안이 되면서 치소가 현재의 성황산 밑으로 옮기면서 역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성산성 앞은 지금은 역리(驛里)라는 이름으로 몇 개 마을이 있다. 실제 이곳은 조선시대에 부흥역(扶興驛)으로 역참의 기능을 했다.
  석정은 꽃을 좋아했지만 아름다움만 얘기하지는 않았다. 1946년에 쓴 ‘꽃덤불’에서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시의 일부만 추려 소개했지만, 일제 강점기 36년은 인간의 양심을 잔인하게 짓밟고 관계를 여지없이 흩뿌렸다. 몸을 팔고 영혼도 넘겨버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비록 36년이 암울하고 힘듦을 인정한다 해도, 시에서는 개인의 사정과 변명을 생략한다. 가족의 피해를 감수하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민족해방을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의 말미에 ‘하늘의 겨울밤 달은 아직도 차니 오는 봄에는 태양을 안고 언덕의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로 맺는다. 그런다고 떠난 벗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리라는 기약은 없다. 그래서 꽃덤불은 더 슬프고 아리다.
  그의 시 ‘가을이 먼 길을 따나려 하나니’를 읽는다. 푸른 대낮에 흰 달이 소리 없이 오가고, 푸른 별이 흘러간다고 시는 말한다. 가을과 함께 오는 현란한 풍경을 시인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외려 산 그림자가 길게 내리우니 빨리 떠나라고 재촉한다.
  해질녘에 산성을 내려온다. 내년에도 시인의 가을 산 고성산성에 몇 번 들러 볼 예정이다. 꽃이 좀 더 피면 좋으련만… 그러나 화려한 꽃이 아니어도 가을은 이미 우리들 가슴 깊숙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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