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일요일, 하늘은 더 없이 맑고 푸르렀다.
약속한 10시가 되기도 전에 어깨에 예초기를 장착한 이들이 해창 갯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반가운 악수와 안부를 묻는 소리가 왁자했다. 공윤석 씨(상서면)의 포크레인은 벌써부터 굉음을 울리며 갯벌 입구를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한살림생협 생산자공동체인 ‘산들바다공동체’를 비롯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미래하서영농조합법인’, 유기농과 지역공동체 복원을 목표로 하는 ‘미친 듯이 농사 짓는 사람들(미농사)’, 유기농 위주의 생활공동체인 ‘변산공동체’ 등 지역 기반 공동체 소속이었다. 또 지역 아동센터와 도내 농업 관련 기관 관계자, 새만금 관련 단체 회원, 일반 군민 등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부안으로 귀농 귀촌한 사람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제초작업 등 해창벌을 정비하다가 새참을 먹고 있는 부안사람들

무관심의 장막을 걷다

본지 보도(681호. 9월 21일자 참고) 이후, 처음 해창 갯벌의 장승군(群)을 정비하자는 연락이 오갈 때만 해도 고작해야 열댓 명 쯤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자 다들 놀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선뜻 나서지는 못했으나 그만큼 갈증은 깊었다는 이심전심이었다. 막걸리 다섯 병을 준비했던 주최 측(?)은 부랴부랴 열 병을 추가로 사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이들은 예초기와 엔진톱을 동원해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잡초 무성하던 그 너른 해창벌이 순식간에 반듯해졌다.
아카시아 나무와 잡목들이 제거되면서 지난 2000년 4대 종단이 설치한 컨테이너 예배당과 법당이 제 모습을 드러냈고, 그 밑으로 해창벌과 장승의 모습이 한 눈에 드러났다.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는 순간이었다.
“새참들 드시구 하셔!”
두부에 맛깔스런 전어무침을 안주로 막걸리가 한 순배 돌자 옛날이야기가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정다운 사람들 볼 요량으로라도 해창벌 청소를 자주 해야겠다는 소리가 무람없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점심식사 때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김진원(상서면)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의논에서 문규현 신부는 인접한 4차선 도로를 개설할 때 관청에서 장승을 치워달라고 요구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그 사람들에게) 해창 장승이 곧 나고 컨테이너 예배당이 곧 나다. 치우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대답해 줬다”면서 “그동안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오늘 정비를 하고 나니 모처럼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본격적인 의논에 들어가자 먼저 매년 한 두 번씩 만나 해창벌을 정비하고 새로운 장승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자신들의 손으로 장승을 세우고도 십여 년이나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그 부끄러움을 이제는 면해보자고 누군가 설명을 보탠다.
이어 장승이 버티고 선 공간을 문화예술적으로 승화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전 세계를 돌아봐도 이렇게 많은 장승이 한 곳에 모인 곳은 드물며, 따라서 이 공간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생태 환경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이었다. 게다가 잼버리대회도 예정되어 있으니 앞으로 천개의 장승을 더 세워 예술적 가치를 확보해 세계적인 명소로 널리 알리자고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모임 형태로 발전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핵폐기장 투쟁 이후 시민사회가 지리멸렬한 듯 보였지만 개별 공동체는 크게 성장해 왔으므로 이제 이들 공동제가 하나로 모여 소통하고 연대하자는 게 요지였다. 이를 제안한 박형진 시인(변산면)은 “반가워서 좋고 뭔가 새로 할 수 있겠다는 두근거림이 있어 좋다”며 말을 맺었다.
이들은 앞으로 ▲장승벌 보존·정비 ▲역사·예술적 공간으로 승화 ▲개별 공동체 간의 활발한 소통과 연대 등을 추진키로 결론을 내고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매향비, 다시 서다

잡초와 나뭇잎에 가려 있던 매향비
지난달 30일 주변을 정비하고 매향비를 다시 세우고 있는 부안사람들
다시 우뚝 선 매향비

 포크레인을 앞세워 널브러진 조경석을 치우고 바닥을 고르기를 3~4시간, 해가 질 녘이 돼서야 매향비를 다시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구덩이를 넉넉하게 파고 머릿돌을 놓는데, 수평을 맞추는데 만도 3~4명이 붙어서 한참이 걸렸다. 머릿돌만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비석이야 홈을 따라 그대로 앉히기만 하면 된다. 마침내 머릿돌이 자리를 잡고 그 위로 매향비가 놓여졌다.
10년 넘게 바닥에 팽개쳐져 글씨조차 읽을 수 없던 매향비가 다시 햇빛 아래 그 잘 생긴 얼굴을 드러냈다.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았듯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갯벌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비를 세우며 해창 다리에서 서북쪽 300걸음 갯벌에 매향합니다”
장승 주변을 청소하고 매향비를 다시 세운 것은 단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부안사람들이 다시 새만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 부안사람들은 새만금사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도 않았거니와, 그나마 지난 30년 동안 정부의 개발 약속에 속고 또 속으면서 진이 빠질 대로 빠져 버렸다. 자연 관심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개발을 서둘러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측부터 해수유통을 통해 갯벌을 살리자는 측, 심지어 제방을 허물고 역간척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뒤엉켜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개발 방향이 아니라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느냐에 있다. 갯벌을 살리든 공장이 들어서든 농사를 짓든, 관 주도가 아닌 부안사람들의 자치권이 온전히 행사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곳은 수천 년 동안 부안사람들이 조개를 캐던 부안 땅이었고 앞으로 수천 수만년 동안 부안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일굴 부안 땅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