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목을 처음 만났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두 산봉우리 사이로 난 활목고개를 넘으니 숨어 있던 마을이 나타났다. 궁항(弓項, 활목)이다. 격포를 자주 찾는 사람들도 격포의 이웃 마을인 이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산 뒤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소박하고 한적한 바닷가로 그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앞에는 소리섬, 뚝바위, 개섬(도깨비섬) 등의 다정한 이름의 섬들이 강한 파도를 막아 포근한 지형을 만든다. 이 마을 서편 해안 움푹 들어간 만은 도당금이고 이 만에는 무너진 돌무더기가 남아 있다. 조수 간만의 차이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던 독살(石箭)이다. 물이 들고 나는 해안가에 돌로 타원형의 둥근 둑을 성처럼 쌓아서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독살 안에 갇힌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원시적인 이 어로 방식이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고 지금까지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가 있는 마을이다.
  궁항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동네 앞에서부터 등대까지 걸어보는 것도 좋고 등대 옆에 정박한 고깃배를 살피는 것도 좋다. 어부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느긋한 바다의 시간도 경험한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 마을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인기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 세트장이 마을 옆으로 들어서고 덩달아 펜션이 이곳저곳에 들어서면서 마을의 고즈넉함도 많이 사라졌다. 2011년에는 해양수산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또 따른 변화가 따라왔다. ‘궁항해안마을 경관사업’에 총사업비 40억 원을 들여 2015년까지 이어졌다. 이 사업으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많이 해결되고 불편함도 많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고샅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과거와 달리 마을이 너무 낯설어졌다는 것이다. 그 중에 눈에 띠는 것이 담장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똑 같은 규격의 돌로 집 담을 쌓았다. 다양한 담들을 헐어내고 똑 같은 재질과 거의 같은 높이로 담을 쌓아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어색한 느낌을 갖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지원한 돈이 어떻게 마을을 낯설게 만들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불편한 마을 시설들이 바뀌고 경관이 바람직하게 변화하는 것을 누가 말하랴. 그러나 담을 쌓되 획일화시키고 다양함과 다정다감함까지 묻어버린 것은 아쉽다. 현대판 새마을 사업이라고 평한다면 너무나 야박한 평가일까. 1970년대 그때 마을에는 새마을 바람이 불어 마을길도 넓히고 흙담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시멘트 브로크로 담을 높다랗게 쌓고 담 위에는 깨진 유리병까지 박아 놓은 집도 생겨났다.
  밑 사진의 저 골목을 지나면 위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다가온다. 바닷가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햇빛에 바다는 빛나고 파도가 치면 작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는 작게 소근 거린다. 그 물결은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듯하다. 다시 마을길을 걸어 나오며, 어느 날 저 돌 담 대신 키 작은 나무 울타리가 대신하고 작은 대사립 문도 보고 어느 집은 꽃담으로 방문객을 반겨주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활목을 처음 찾던 감동은 여전히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궁항은 첫사랑처럼 시간이 흘러서 주름이 져도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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