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 / 도토리 / 가을풍경

<운문부 장원>

가을 들
- 김설희 부안여자고등학교 1학년

볏단을 잘라낸 민둥 논
잘라진 벼 뿌리 사이로
무심한 바람이 스친다.
날카로운 뒷모습

핏줄도 질긴 농부의 손
억센 손가락 사이로
파리한 노을이 비친다.
애처로운 뒷모습

손길이 다 닿은 가을 논엔
타다 남은 지푸라기 재가
흩뿌려진 덧없는 청춘의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음이 다 닳은 농부의 맘엔
말라붙은 진득한 시름이
노쇠한 부질없는 봄날의
흔적을 쫓고 있다.

잊혀진 것들은 슬프다.
민둥 논도, 억센 손도 슬프다.

쓸쓸한 달빛과 차게 우는 소리와
따뜻한 입김과 슬픈 것들이
가을 저녁, 들에 있다.


도토리
- 박상현 부안초등학교 5학년

때굴때굴 땍때굴
다람쥐와 청설모가
겨울을 버티려고
도토리를 가져간다.

아이들은
가지고 놀으려고
가져간다.

도토리는 우리의
친구이다.


가을 풍경
- 이나라 부안초등학교 1학년

빨간 옷을 입고
우리 집 앞마당에 버티고 있는
빨간 단풍잎

단풍잎을 보니
동생 손 같다.
단풍잎에 코를 대보니
우유냄새가 난다.

단풍잎은
친구들과
나무를 꽉 잡고 있어서
얼굴이 빨간 색인가보다.
단풍잎은 우리 가족인가보다.


[운문 심사평] 초등학생의 싱싱한 상상력에 놀라
심사위원 부안문인협회 김기찬 시인
다양한 상상력을 엿보기란 즐겁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싱싱한 상상력은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심사자를 낄낄거리게 했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상상의 운동장에서 그들과 함께 웃고, 소리치며 한바탕 신나게 뛰어논 쾌감 같은 것이었다.

초등부 이나라의 「가을 풍경」과 박상현의 「도토리」를 장원작으로 내미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가을 풍경’은 대상에 대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내면의 심상을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으로 연결시킨 점과 ‘도토리’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나름대로 사물을 통해 재 해석해 낸 동심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잘 표현된 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중학생들의 작품은 참여 학생이 너무 적어서인지 눈에 들어온 작품이 없었다. 그로인해 장원작을 내지 못한 점이 이번 심사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고등학생의 작품수준은 고른 듯 보였으나 개성이나 진정성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고등부 장원작에는 부안여고 김설희의 「가을 들」을 고심 끝에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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