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공동체 만들기서 출발...생활 속 제도·법 바꿔나가

가나가와현은 도쿄 남쪽에 있는 작은 현이다. ‘현’은 우리나라로 치면 ‘도’인데 면적이 동서로 약 80km, 남북으로 약 60km밖에 안되고 인구도 전주시보다 20만명 가량 많은 정도다. 땅덩어리가 크지는 않지만 산업은 매우 발달해 있다. 우선 일본 최대 무역항인 요코하마가 있고 조선업, 철강 등 중화학공업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온천도시이기도 하다.

가나가와현이 주목을 받는 것은 요코하마라는 유명한 항구도시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 실험 때문이다. 바로, 지역정당으로 잘 알려진 생활정치운동이 그것이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는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말한다. 일본 역사에 존재했던 정당 가운데 네 번째로 수명이 길다는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아직 단체장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광역의원 5명, 기초의원 40명을 배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45명의 의원이 모두 여성인데다 챌린지 기금, 워커즈콜렉티브, 위숍 등 공공선을 지향하는 정신으로 더욱 전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유명세로 치면 그에 못지않을 부안의 여성들이 만남을 가졌다. 지난 1일부터 3박4일 동안 의정참여단, 두리반, 부안여성영상집단 ‘줌마’, 여성환경바람 레헴의 활동가들이 일본 가나가와현으로 직접 날아갔다. 그들이 보고 만난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2회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주



아사쿠사 절을 방문한 가나가와 네트워크 연수 참가자들. 왼쪽부터 이혜순, 이오순, 한순옥, 최문희, 이미숙, 이근진, 박양례, 장영예, 이숙씨.

3박4일 일정으로 계획된 일본 가나가와현 ‘가나가와 네트워크’(이하 NET) 연수의 가장 큰 의미는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들의 참여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장을 방문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침. 총총히 떠있는 별들처럼 앞으로 부안지역에도 밝은 일들만 있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부안지역 8명의 일행은 새벽 1시30분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서 공항버스로 갈아 탄 일행이 서울에 도착한 건 같은 날 5시30분. 나리타행 비행기에 탑승한 일행은 기내 안에서 사뭇 다른 세상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하늘 가까이에서 느껴보는 또 다른 햇살과 구름떼들. 남극의 설경을 보는 것 같았다. 새벽 1시30분에 집을 나서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정오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 아사쿠사 절, 오다이바 해상공원

일본에 도착한 일행은 지하철을 이용해 우에노역 부근 아사쿠사 절로 향했다. 아사쿠사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시내에서도 가까워 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절 주변의 상점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그제서야 일본인의 냄새가 어떤가를 알 수 있었다. 90여 개가 넘는 대부분의 상점들이 일본의 전통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람선에 오른 건 저녁 6시경이었다. 오다이바 해상공원은 10여년 전 쓰레기 매립장을 매립해 만든 인공섬으로,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축소판으로 조각해 놓은 것을 보는 순간 또 무엇이든 작게 만들어내는 일본인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만나다

3박4일 일정 중 둘째 날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우리 일행 10명은 8시30분 호텔로비에서 유미꼬 씨를 만나 NET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들은 녹차를 건넸고, 녹차를 마시면서 나는 물과 뗄 수 없는 우리들의 생활처럼 그들의 생활 또한 녹차와 함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는 NET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한 명 한 명의 소개가 있을 때마다 꼼꼼히 방문자의 이름을 확인하던 그들의 성실성.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섬세한 면모를 보면서 나는 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인격체이고 공동체의 씨앗들인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이 각자의 소망을 적은 반핵티셔츠를 NET 사무실에 기증하고 있다.

NET는 21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지역에 8개 단체를 두고 있다. 또 가나가와현은 도쿄 부근에 자리하고 있어서 주거와 중공업지역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은 물론 노인복지, 아동복지, 지역인들 간의 유대감마저 파괴되는 문제를 낳았다. NET의 원점은 바로 주민들이 안전한 먹을거리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 출발을 해왔다.

70년대 초 생협활동으로 시작한 NET는 지역여성과 마을을 통해 여기까지 왔으며, 보다 안전한 곳을 내 손으로 만들자는 것이 기본운동이다. 또한 NET는 80년대 생활클럽생협의 조합원이 중심이 되어 22만 명의 서명을 모아 합성세제를 추방하는 조례제정 직접청구를 현내 7개 시의회에 제출했으나 모두 부결되는 쓰라림을 겪어야 했다.

지방의회의 생활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직접 겪어본 NET의 변화는 그때부터였다. 정치를 바꿔야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NET는 83년 요코하마 카와사키시에서 1명이 당선되어 첫 대리인이 탄생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어 NET는 84년 7월에 설립한 지역정당으로서 시민들의 힘을 높이고,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그 지향점을 모색해오고 있다.

일본은 4년마다 통일지방선거가 있다. 83년부터 다섯 차례의 경험을 하면서 현재 가나가와현은 시를 포함해 35명의 의원이 당선되었다. 올 3월에는 「NET헌장」을 책정하여 5개의 원칙을 정하기도 했다.

첫째, 시민모금과 자원봉사로 정치와 선거를 치른다. 둘째, 의원도 멤버도 입수한 정보는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셋째, 문제해결은 시민들과 논의해서 민주적으로 해결한다. 넷째, NET 의원들의 보수는 적극적으로 기부하고 지역활동에 이바지한다. 다섯째, 의원은 2기 8년에 교대한다.

둘째날 NET 사무실에서 NET활동의 현상과 과제, 미래를 향한 대처 라는 주제로 미니포럼을 가졌다. 가운데 마이크를 든 사람이 통역을 해준 마나부 릿쿄우대학 교수.

#일본의 정치를 바꾸고 싶은 NET

마타키 씨(NET정치 스쿨 이사장, 전 대표)는 ‘NET활동의 현상과 과제, 미래를 향한 대처’라는 주제를 통해 미니포럼, 조례작성제정연구회, 시민사회 Challenge 기금, WCB(여성·시민조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의 정치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 운동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현재 정치에 무관심하며, 세금을 납부하면서도 그 사용처마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운동을 해야 한다. 또한 문제가 생겨야 반대운동을 할 수 있는데, 너무 늦거나 큰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다. 미리미리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미니포럼이다.
먼저 자기 주변의 법, 제도 등을 바꿔 생활에 밀착시키는 것이 우선 목적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 위험한 도로를 확인하거나 쓰레기문제 발생 등의 문제를 명확히 찾아내야 한다. 조례작성제정연구회는 바로 생활과 가까운 주제를 찾아내기 위해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가마쿠라 지역에서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규제하자는 조례안을 제출했었다. 하지만 부결됐다. 이처럼 우리는 가까운 주제를 가지고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제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미리 조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조직화해야 하며, 교육하는 것이 그 과제이다. 나아가 정치·의회에 대한 반대운동뿐 아니라 정치문제를 바꾸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노인복지, 어린이복지, 장애인복지를 위한 단체시설을 만들고 가능하다면 재활용단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해외 이웃을 위해 지원하는 운동이 직접적으로 정치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를 바꿀 수 있으며,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지역서비스 개선 위해 필요한 3요소

지역의 서비스 및 시설의 개선은 3가지 요소(사람, 정보, 돈)가 필요하다.

챌린지 기금은 NET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여성활동단체, 여성단체가 새로운 정책을 만들 때 필요한 자금으로 기부하는데, 전국차원에서 요구가 있을 때 제공된다. 또한 가나가와현에서 새로운 NPO(비영리단체 NGO와 비슷), NGO 활동 시 지원하며, 한 단체에 50만~200만엔까지 지원한다. 원래는 안정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에 지원해왔는데 지금은 신생단체에 지원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특히 챌린지 기금은 도전적 운동을 해오면서 돈의 필요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원한다. 기금, 자금, NET의 일상적 활동에 의원들이 기부하고 있다.

시의회의원 평균연봉은 700만~800만엔이다. 대부분 NET에 기부되고 있다. 많은 NGO 단체들이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NGO단체는 정부의 하청기관을 하면 안 된다. 시민들이 스스로 충당함으로써 시민사회 속에 존재하도록 원칙을 세워야 한다. 챌린지 기금과는 별도로 WCB를 만들어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타키 씨의 설명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두 시간 남짓 진행되는 동안 적극적인 대화와 성실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사람의 기본을 생각해 보았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오전에 통역을 해 준 마나부(릿쿄우대학 조교수) 씨를 만나고서였다. 부안핵폐기장반대운동과 관련된 논문을 쓴 그는 한국의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며 부안의 소식을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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