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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꽃63-내소사에서 상사화를 찍다

꽃을 잘 모른다. 꽃 피는 것이 신기하고 아름답게 느끼지만 거기까지다. 꽃 이름을 알려고 노력도 하지 못했다. 주변에 꽃과 나무를 잘 아는 지인들이 많다. 부럽다. 산을 가면 그 꽃과 나무의 특성이며 언제 꽃이 피고 지며 나무의 활용은 어떤지를 열심히 알려주지만, 곧 잊어버린다. 산에 가서 나무와 꽃에 대해 아는 체 해본 기억이 없다. 관심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애써 위로도 해 본다. 땅바닥의 그릇 조각이나 기와 파편들을 보면 곧바로 반응이 와서 주워서 열심히 들여다본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네. 기왓골이 있다면 주변에 사찰이 있을 수도 있는데…”

9월 초에 이틀 간격으로 내소사(5일)와 영광의 불갑사(7일)를 찾았다. 이 때 내소사 전나무 길 오른편에 노랑 상사화(相思花)가 활짝 피어 사람들을 부른다. 지천에 피어 있는 꽃을 찍느라 관광객들은 바쁘다. 필자는 꽃에 취한 관광객의 모습을 찍었는데, 흐릿한 사진 한 장을 골랐다. 윤곽이 뚜렷한 사진을 올리면 초상권 침해(?)라는 항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광 불갑사 앞에서는 ‘상사화 축제’를 준비하느라 포클레인이 여러 대 동원돼서 굉음을 내면서 도랑도 치우고 부산했다. 두 산사(山寺)에서 본 상사화는 색깔도 비슷하고 특히나 검은 나비들이 쌍을 이루어 꽃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도 판박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불갑사는 일주문을 지나 길게 걸어야 절집에 닫고, 길이 아스팔트로 되어 있어 참 거시기 하다. 나올 때 보니 산 밑 개울가 옆으로 오솔길을 내서 찾는 사람들을 배려했으니 작은 길을 걸어보니 또 다른 세계다. 불갑사 일주문 앞의 식당들은 사람들로 붐볐다. 보리밥을 먹었는데, 나물 반찬이 21가지가 나와서 입이 벌어졌지만, 이내 불편했다.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내소사 앞 음식점에는 무슨 밥이 있더라?’ 잘 떠오르지 않는다. 손님을 부르는 큰 소리가 이 길을 오히려 피하고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변산을 찾는 사람들은 이웃집 들르듯 내소사를 찾는다. 가진 것이 많기 때문인가. 소박한 일주문, 소리 없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키 큰 전나무, 단청을 하지 않아 민낯 그대로의 대웅전의 꽃창살 등은 손님의 발길을 붙잡을만하다. 겨울에는 일주문 앞 원암마을 당산제가 할아버지 당산 앞에서 이루어지고 가을이면 절집 뒤 봉우리가 단풍으로 옷을 입는다.

1999년 12월 31일 밤의 내소사 음악회를 잊지 못한다. 그 해에 격포 해수욕장에서 해넘이 축제가 끝나고 내소사 산사 음악회가 열렸다. 날씨는 춥고 하얀 입김을 연달아 내며 대웅전 올라가는 돌층계에 서서 몇 시간을 견뎠지만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 뒤에 다시 이런 성격의 음악회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작은 마을이나 사찰에서 해마다 이루어지는 오래된 잔치를 기다린다. 조용히 입소문만으로 알려져 사람들이 찾는 그런 축제. 가수들이 주인인 그런 잔치 말고 참여자들이 주인이고 동무들 얼굴만 봐도 흥이 나는 그런 축제. 이웃 동무들이랑 다시 와야지 하고 자연스럽게 맘을 먹는 그런 시간들. 내년에도 상사화가 피는 9월 초면 내소사를 찾아야겠다고 즐거운 상상을 하는 일상의 아침에.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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