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그 때 부안읍의 본정통(本町通)이 뜯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본정통은 지금의 군청 앞에서 구 국민은행 앞을 지나는 길로 일제시대 부터 부안에서는 가장 중심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거리였다.
  3월에 토요일을 이용해서 거리로 나섰다. 사진으로 기록도 해보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봄 햇볕은 따가웠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싸하여 누구에게 말 걸기도 어려웠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많은 추억을 쌓으며 살았을 텐데, 중심지가 변하고 덩달아 이곳의 상권도 무너지자 이제는 보상 몇 푼 받아가지고 나가야 할 처지였다. 전 부터 필자는 이 본정통에 있는 일본식 집을 살려 군산처럼 거리 조성을 해서 역사의 거리로 만들면 좋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지만, 먼 산에 메아리나 날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요즘 들어보니 이곳을 에너지 거리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했다는데, 아직까지도 이 거리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도로 넓힌 것과 조형물 몇 개가 이 거리의 주인으로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부대끼며 살던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부안에서 새롭게 조성되는 곳에는 거리라는 이름을 곧잘 붙인다. 물의 거리, 에너지 거리, 젊음의 거리. 앞으로는 또 무슨 거리가 만들어질지 궁금하지도 않다면 너무 지나친 단정일까. 도시재생 사업이 원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쫓고 포클레인을 이용해 옛 기억을 정리해서 깔끔하게 만드는 것 정도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본정통에 갔다가 태양상회가 빼꼼히 열린 것을 봤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문 위에 붙은 소 핑경이 맑게 소리하고, 인상 좋은 할머니가 반긴다. 장사가 잘 되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얘기가 건너왔다. “조금 있으면 어딘가로 가야는디, 무슨 장사가 되겠냐”며 되물었다. 할머니는 정읍 칠보에서 살다가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일제 때 오빠를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피난을 다니다 보니 떠돌게 됐다는 것이다. 정읍의 영원에서도 살았고, 상서 면사무소 뒤에서도 살았다. 본정통 자리에서 부부는 현대 양복점도 했고 현대상회라는 상호를 붙이고 장사도 해봤지만 할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한 뒤에는 태양상회라는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다. 진열대에는 낯익은 물건들이 보인다. 신라면(컵라면), 비타민씨, 홍삼셋트, 까스명수 한 박스, 델몬트, 잔치집 식혜, 부탄까스, 간장, 퐁퐁, 락스, 동진주조 막걸리 15병, 꼬깔콘, 새우깡 정도이다. 해지름 때 파장을 앞 둔 장터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이랄까.
  이 구멍가게는 12 평뿐이 안 되기 때문에 보상도 적을 것이니, 이 보상금으로 어디 가서 살 것인가 막막하다고 민씨 할머니는 걱정하고 있었다. 또 한 번 오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는 옮겨간 그곳에서는 봄날처럼 따뜻하게 건강도 유지하며 행복하신지…
  민씨 할머니의 태양상회 위로는 진강상회, 도장을 파는 대흥당이 있었고 바로 밑으로는 소우, 두리치킨호프, 방실이노래 연습장, 원조해장국, 일신모자점이 이어졌다. 지금은 소우를 빼놓고는 우리 기억에서 놓아버린 이름들이다.
  구도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뜨거운 감자다. 그대로 두자니 도시가 슬럼화 될 수 있고 손을 대자니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오랜 실험을 통해

성과를 낸 도시들도 있다. 젊은이들을 주체로 세워 버려진 옛날 창고에서 찻집 등을 연 제주도, 삼례라는 쇠락한 곳을 책 박물관이나 전시실 등으로 재탄생 시킨 완주. 부안에서도 창의적인 열정으로 중단기 계획을 세워 미래를 준비할 시점이다. 부안은 역사문화가 차고 넘치는 곳이다. 이 역사문화에 기초한 프로그램으로 ‘부안의 길’을 모색하여 지역 생태계를 살려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중요한 시점에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한다면 위기의 겨울이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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