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것이 농촌에서 젊은 여성 찾기라고 한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서 들판 한가운데 깃발을 꽂고 족장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십 대의 젊은 여성이 있다고 해 깃발을 따라 그녀를 만났다.
“농사일이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같이 놀 또래가 없어서 너무 심심해요. 만나러 와 줘서 감사해요” 오늘의 주인공 스물여덟 살 미혼의 새내기 여성농업인 고혜영 씨의 첫 말이다.
대학 졸업 후 도시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그녀가 농사를 선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단호박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애써 농사지은 단호박 가격이 폭락해 시름이 깊다는 말에 위로 차 부안에 내려온 그녀는 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자신이 평소 소통의 창구로 즐겨하던 SNS와 블로그에 판매 글을 올렸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예상 밖의 주문이 이어져 창고에 쌓인 근심 덩어리 단호박 3톤과 봄에 따놓은 애물단지 오디를 한 건의 불만도 없이 모두 제값을 받고 팔아 치운 것이다.
“그땐 정말 열 심청이 부럽지 않은 효녀였죠.” 눈을 반짝이며 한참 동안 자랑을 늘어놓는 그녀는 그때서야 부모님의 농사기술이 당대 최고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나아가 반품 없이 판매할 수 있게 재배해 낸 부모님의 생산 능력에 자신이 가진 온라인 소통 능력을 더하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확신도 얻게 됐다고 한다.
“도시로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어요.” 그녀는 공무원 시험도 확실히 뭘 하겠다는 것 없이 시작한 것이라 내가 뭘 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 포기하기도 쉬웠다고 한다. 비슷한 또래가 겪는 고민의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너무 궁금해 망설이다 물었다. 판매수수료로 얼마나 챙겼어요. “다 팔고 났더니 그냥 입을 씻으시던데요. 지금 용돈 받아 써요.” 젊은 아가씨다운 솔직한 답변이다. 그녀는 그때 내가 벌고 내가 갖는 전문 농산물 판매 CEO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청여농’에 가입했다.
‘청여농’은 청년여성농업인 CEO연합회의 줄임말로 2016년 농협에서 전국 단위로 조직한 단체로서 미혼의 여성 농업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국에 90여 명이 활동하고 있지만 가입조건 탓인지 부안에는 현재 3명의 회원이 있다.
여기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부모님과 함께 오디, 참깨, 들깨, 호박, 고추 등 다양한 작물 재배 실전을 쌓고 있으며 수확된 농산물 모두를 온라인 등 직거래를 통해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녀는 먼저 ‘청호뜰’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이 이름은 고향인 하서면 청호리의 ‘청호’에서 따 온 것이지만 ‘호수 호’가 아닌 ‘좋을 호’를 써 맑고 좋은 뜰에서 자란 농산물이라는 내용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청호리 들녘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을 판매하겠다는 야심이 숨겨 있다.
현재 ‘청호뜰’ 농산물은 서울 성동구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직거래 장터에 빠짐없이 출품해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고 네이버 스토어 팜과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카페와 밴드 모임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더불어 이번 추석명절을 겨냥해 그녀의 가공품인 뽕잎가루를 비롯한 ‘청여농’ 여성농민들의 생산품을 모아 ‘추석 꾸러미 선물세트’를 만들었다며 홍보해줄 것을 야무지게 부탁한다.
그녀가 서울 등 각 지역에서 열리는 직거래 장터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데에는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 한동안 못 푼 수다를 풀러 가는 것이다. “동네에 저와 얘기 할 사람이 없어 그곳에 온 ‘청여농’ 언니 동생들과 한바탕 웃고 떠드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제일 좋아요.” 맨 처음 “또래가 없어서 심심하다”는 그녀의 말이 투정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또한 하서면 안에서 자기 또래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며 향후 부안군 전체에 젊은 여성 모임을 구상하고 있다는 포부도 밝혔다.
또래 말고도 심심해 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며 조심스레 결혼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민감한 듯 한참 후에야 “남자친구도 없지만 왜 생각을 안 해 봤겠어요. 하지만 제 결혼은 저보다 동네 분들의 관심이 아주 많아요.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서울로 가라’고 시도 때도 없이 볼 때마다 말씀하세요.” 정색한 얼굴에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체 농민 중 35세 미만의 젊은 농부가 3%에 그친다는 통계는 농사짓지 말고 서울로 올라가길 바랐던 세대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던 농촌에 사는 젊은 사람은 이야기 나눌 또래도 미래를 함께 할 이성도 찾기 어려워졌다.
낮에는 농사일하고 밤에는 온라인 판매를 위해 잠을 설친다는 그녀는 농사가 남성 위주의 업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생산만큼 중요한 것이 판매고 온라인 판매의 경우 여성의 섬세함이 더욱 요구되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고 동네 할머니들 없으면 밭농사 못 짓는 상황이 멀지 않았다”며 농업이 지속되기 위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농업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오게 될 젊은 여성 농업인이 그녀를 찾을 것이고 지역 농업에서 그녀의 위치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부담에 익숙해지라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농업의 미래를 위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대뜸 “왜 저한테 그런 걸 물어보세요. 책에도 나오고 TV토론에도 다 나오던데... 저는 그냥 지금 하던 데로 할게요.”라고 한다.
아직은 여물지 않은 스물여덟의 농부 아가씨에게 미래를 맡기려는 욕심이 앞선 질문 같아 미안했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너른 청호뜰을 다스리는 최초의 여족장이 되길 욕심 부려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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