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중학교 학생들과 하서의 비득치를 향해 갔다. 새만금을 막기 전에는 파도가 이들이 앉아 있는 바위에 넘실거리고 뒤에 있는 집까지도 파도에 시달렸다고 집 주인은 흐뭇한 추억을 꺼냈다. 함석에 씌어진 ‘갯벌체험장’이라는 글귀가 이곳에 갯벌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수평선의 갯벌은 사라지고 물은 멀리 가뭇하게 보이고 가축을 먹이려는 풀들이 비득치 갯벌을 덮었다.
이들 학생들과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부안을 얘기했다. 이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안다. 방탄소년단이 어쩌고, 요즘 어떤 노래가 뜨고, 부안의 어느 집에서 맛있는 것을 팔고… 이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과 몰랐던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부안지역을 걸으며 핸드폰으로 지역 사진을 찍도록 했다. 물론 찍으면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도록 해서 이들의 사진으로 교실에서 수업도 했다. 필자는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기록 사진을 찍었다는 경험으로 사진을 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이들은 사진을 연출하는데 까지 발전했다. “너희들만큼 사진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찍는 학생들도 많지 않을 거야. 사진에 주제가 있어 좋아. 나도 부러운데…”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인문학에도 관심 갖기를 바랐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관심 과 고민 아닌가. 또한 역사라는 것이 높은 곳에 있거나 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다. 우리가 흔히 대하는 일상 속에도 역사는 살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역사는 공부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을 옥죄고 있었다. 필기시험 성적으로만 역사를 평가하다 보니 학생 시절이 끝나면 역사와도 헤어지는 것이다. 역사를 자신에게 적용하여 ‘역사의 길’을 가기 보다는 적당한 ‘현실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저 갯벌에도 역사는 있다. 정부에서 돈을 투자해서 바다를 막아서 땅도 만들어주고 기업도 유치하면 부안의 미래는 장밋빛처럼 밝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지배적이었다. 환경을 얘기하고 새만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안에서 설 곳이 없었다. 필자도 학교 현장에 있을 때, 새만금 막는 것을 반대하는 주장을 신문에 썼다가 익명의 사람들에게 맹공을 당했다. 편지의 내용은 ‘저런 교사는 학교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들이 날라들었다. 수년이 지났지만 필자는 지금이라도 해수유통을 시켜서 일부 개발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질도 담보할 수 없는 담수호를 만들겠다는 발상부터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새만금이 황금알을 낳는 양 도민과 군민들을 우롱했던 정치권도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저 귀한 갯벌을 없애서 골프장을 만든다? 카지노를 만든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진다. 그곳에는 어민들의 삶이 녹아있고, 눈물이 있고, 제 살고 있는 고향을 떠나야 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이 남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새만금의 미래를 기업과 정치권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중학생들 얘기를 하다가 다른 곳으로 한참 나갔다. 이제 2학년이 된 그들은 8명이다. 개성도 분명하고 발표도 곧잘 하고 웃기도 잘했다. 마음속으로 늘 다짐했다. “이들은 나보다는 훨씬 훌륭한 일을 할 거야.” 그런 기대와 확신이 없으면 어떻게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지.  

이들과 함께한 선생님들, 자유학기제 업무를 맡은 박선생님, 고마운 분들이다. 그 열정이 꼼꼼하게 아이들을 챙기고 도우며 작은 학교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들과 함께한 6개월, 참 행복했다. 시간의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지만, 이 교육의 효과가 당장 보이지 않고 몇 십 년이 지나서야 아스라이 피어날 수 있어도 보람이다. 그 보람은 수업에 참여했던 필자 보다는 ‘봉래 동천’ 의 아름다운 자연과 부안 사람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이 땅을 가꾸며 정의롭고 힘차게 산 땅의 사람들, 부안의 선조들에게 절이라도 올려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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