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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60-변산의 가마소에 발 담근 때가 있었어

변산은 물이 적다. 비가 오지 않으면 그 많은 골짜기는 물이 마르기 마련이다. 물이 있는 계곡이라면 지서리에서 오르는 지름박골, 청림에서 새재 넘어 쇠뿔바위 가는 구시골, 직소를 향해가는 봉래구곡, 거석골짜기, 이들 물들이 모여 백천내를 이루어 해창을 통해 서해로 들어갔다.
  하나 더 붙이자면 회양골의 와룡소에서 시작하여 가마소를 이루는 곳이다. 부안댐 막기 전까지만 해도 가마소를 자주 찾았다. 풍부한 수량하며 흐르던 물이 바위 사이에서 작은 폭포를 만들고 곳곳에는 가마솥처럼 다양한 모양의 늪(沼, 소)을 이루었다. 가마소를 볼 때마다 ‘변산의 절경은 이곳’이라고 늘 상 생각했다. 가마소는 바위 위로 수 키로에 걸쳐 물이 흐르고 기암절벽이 있어 물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나무들이 우거져 물의 깊이를 더하고 때로 물소리를 웅장하게 키워 산 속을 울린다. 이 곳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어떤 이는 푸른 물에 몸을 던져 여름의 시원함을 느낌에 넣어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통제구역이다. 부안댐의 상류라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러한 가마소 기행을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인 1937년에 부안의 소설가 김태종 이 소개한다.

점심을 하고 가마소 계곡을 찾아들다. 과연 말로 듣던 바와 같이 웅장하고 운치 있는 것이 변산 중의 어디보다도 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무서운 폭포가 있는가하면 여자가 소꿉질 하느라 만든 듯한 자그마한 폭포가 있고 쏘가 있는가 하면 몸을 담그고 놀만한 곳이 있다. 넓은 바위가 있는가 하면 깊은 굴이 있어 무슨 전설인가 간직하고 있는 듯. 별유천지비인간을 찾고 싶은 곳이었다. 이번 변산행은 오로지 이곳을 보기 위한 길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물을 끼고 그곳을 내려와서 서운암(捿雲岩)을 거쳐서 노적(露積)매에서 술을 먹은 후에 청림(靑林)에 와서 하루의 지친 몸을 닭고기와 술을 들고 쉬었다.

위 글에는 ‘이번 변산행은 오로지 이곳(가마소)을 보기 위한 길이었다.’고 감흥을 써놓았다. 당시에 이곳은 변산에서 가장 깊은 동네였고, 구도하고 수양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던 곳이었다. 1980년대에 이곳을 찾을 때만해도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 후에 밖으로 이주시켰다. 이곳에 변산기도원이 그래도 남아 있었는데 원장이 수년 전에 죽고 나서 기도원은 나무속에 숨어 있다. 중계가 물에 잠기고 나서 가마소에 가자면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가마소에서 와룡소까지 걸으면서 살피면 사람들이 살았음직한 장소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청림리에 속했던 이곳 서운마을은 부안댐에 저수가 시작되면서 밖으로 이주하여 마을이 사라졌다. 
  올 여름 참 더웠다. 무더위는 꺾일 줄도 모르고 지금도 계속되지만, 변산을 생각하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그것도 가마소의 흐르는 물을 생각하면 말이다. 물은 차갑고 소(沼)의 물은 검푸른 빛을 띠어 그 깊이를 모른다.
  몇 년 전에도 가마소가 보고 싶어 우반동에서 회양골을 거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가마소 초입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곳에는 어떻게 왔는지 알만한 부안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어떻게 왔어?” 하며 서로를 반기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가마소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그 곳에 발 담그며 만난 차가운 물을 부르면서… 

정재철  jjc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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