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읍내 상원아파트에 살 때였으니 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여름 한철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자고 아파트 사람들이랑 얘기했는데, 마땅히 갈 곳을 못 찾아 흐지부지 될 무렵 청림의 거석마을이 떠올랐다. 거석은 긴 계곡의 물이 좋았고 낮은 나무들은 숲 그늘을 만들었다. 점심 먹고서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물장구치며 놀고, 부모들 사이에도 물놀이가 시작되어 상대방에게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하다가 프라이팬에 물을 떠서 쫓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솥단지 뚜껑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땀나게 물장난을 했다. 이때 뚜껑들이 우그러진 통에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는 뒷얘기도 들었다. 아파트 사람들과 추억이 많아서인지 그 분들과는 1년이면 몇 번씩 만나서 옛 무용담(?)을 나눈다.

거석(擧石)은 ‘들독거리’라는 우리말 이름이다. 노적메에서 남으로 골짜기를 따라 길게 들어선 마을이다. 거석 마을은 갈치도막 같이 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바우 뽁대기에 올라가야 비로소 동네가 잘 보인다. 지금도 거석을 포함해 청림지역은 자주 찾는 곳 중의 하나다. 한국전쟁 기 좌우의 분노 속에서 지역 주민들이 당한 생사를 넘나든 억울한 사연들이 각 마을에 숨어 있다.

마을을 지나다가 거석슈퍼에 들러 주인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주인 최씨는 웃가티에서 30년 전부터 점빵을 했고 90년대 초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 부안댐 막기 전이라 장사가 잘 되었다. 여름이면 동네 앞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가족들에게 매운탕 배달도 하고 닭죽도 쑤어 팔았다. 음식 솜씨가 좋다고 꽤나 소문이 났다. 그러던 중에 상수원 보호지역 지정에 찬성 도장을 찍었다. 물이 깨끗해지면 사람들이 더 찾아오고 장사가 더 잘 될 줄 알았다.

“찬성해서 배리 버렸시요”라고 최씨는 말한다. 상수원 지정 뒤에 물에 일절 못 들어가게 하니 상점뿐만 아니라 도로 옆에 있던 모텔도 죽어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오간디요” 자조 섞인 한마디를 남겼다.

평소에는 음료수도 떼어다 놓지 못한다. 팔리지 않으니까. 7,8월이면 사람들이 간간이 찾으니 음료수도 떼어다 놓고 닭도 몇 마리 들여다 놓는다. 최씨는 현재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슈퍼를 지키고 있다.

산 쪽으로는 큰 저수지가 들어서고 도로가 나면서 거석슈퍼는 우반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되었다. 우반동을 향해가는 여행객들은 이곳 거석슈퍼 앞에 잠깐 차를 멈추고 식사나 음료수도 먹을 수 있고 평상(平床)에 앉아서 평안함도 나눌 수 있다. 뭐 그냥 앉아 있으면 사위(四圍)가 고요하여 시간이 멈춤 듯하다. 나무가 푸른 요즘 같은 철에는 슈퍼 간판이 보일락 말락 하여 나무속에 숨으니 쉽게 지나칠 수 있다.

거석슈퍼를 생각하자니 시골 마을마다 몇 개씩 있었던 점빵이 생각났다. 외상술도 깔고 가끔 화톳방도 붙였던 남정네들의 해방구 같은 곳. 아침마다 짐빠리에 실은 술이 깔그막을 오르며 힘들게 배달되어 점빵의 허기를 달랬다. ‘막걸리에 물을 부었네 안 부었네’ 소문이 자자했던 점빵 안의 술동이는 흙바닥 한쪽에 파 묻혀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마음 속 추억 저편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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