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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 꽃57-내소사 귀공포의 용은 ○○을 물고 있다 6
  • 정재철 (부안이야기 이사)
  • 승인 2018.07.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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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시기다. 사회의 약자와 소외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정치인 노회찬의 죽음은 마음 한쪽이 빈듯하고 많은 것을 잃은 뒤의 후회와 무기력을 밀고 왔다. 노회찬은 이제 사회 현상이 되고 역사로 남는다. 그의 고단한 영전에 마음의 꽃 한 송이를 올려놓는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활동이 컸다. 서산대사의 지도 아래, 처영·영규·사명 등 승려들은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왕과 유교 지배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웠다. 승병의 궐기로 왜군들은 사찰을 집중적인 공격 목표로 삼아 많은 절집이 잿더미로 변했다. 승려들의 희생과 절집의 피해는 오히려 전쟁이 끝난 17세기 초 불교 중흥의 기회가 되었다. 전란에 불타버린 사찰은 물론 억불책 때문에 폐사가 되었던 사찰에는 재건과 중창불사의 열풍이 불었다. 내소사도 1633년(인조11년)에 청민이 중건하였다. 그러나 사찰에는 대규모 불사를 할 만한 재정이 없었다. 따라서 사찰 건축은 전적으로 자체 승려들의 기술과 인력으로 충당해야 했다.
절집을 짓겠다하여 바로 집짓기에 나설 수는 없었다. 실력 있는 도편수를 만나야했다. 건축의 책임자인 대목(도편수)은 집을 짓는데 도면을 그려 설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 속에 집의 구성을 짜며 기본 설계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공사에 필요한 나무의 형태와 종류, 수량이 산출된다. 이를 ‘물목내기’라 한다. 대목은 설계한 내용대로 부재들을 재단하고 가공하는 일을 한다. 생나무 위에다가 먹줄을 튕겨 부재의 모양을 그리고, 그대로 다듬어 다른 부재들과 조립한다. 나무는 생물이므로 무게에 눌려 휘어지거나 줄어드는 변형이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 함량이 변하면서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자체 변형도 발생한다. 목수들을 괴롭힌 것이 목재의 변형이고 유능한 목수라면 완성 후에 일어날 변형까지도 예측하고 나무를 가공해야 했다.
민간 건축과 달리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물이 용이다. 뱀을 신격화한 인도의 용신은 불교 성립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護法神)이 되었다.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되어 정착하는 과정에서 용신은 인도 용의 모습을 벗고 중국 전통 용을 따르게 되었다.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중국의 예를 따랐다.
내소사 건물 앞쪽 두 쪽 귀에 있는 용머리를 어떻게 해석할까? 극락세계를 향해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뱃머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법당이란 불자들이 부처와 함께 타고 가는 배의 선실과 같은 곳이다.
오른쪽 귀공포의 용은 목탁을 물고 있다. 목수는 여의주를 배치할 곳에 목탁을 올려놓아 담당 목수의 해학을 드러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목탁은 사물(四物) 가운데 목어(木魚, 나무물고기)를 줄인 것이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승려의 손에 든 목탁(木鐸)은 ‘수행자는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이다. 극락세계를 가는 배의 앞머리에 목탁을 배치했으니 이 배가 가는 동안에 자지 않고 도를 닦으면서 닥칠 어려운 파도를 극복한다고 할 수 있다. 승려는 왼손에 목탁을 오른손에는 목탁 채를 들고 있다. 중국 선종에서는 목탁 채를 용으로 삼았으니 내소사의 용과 목탁을 보면서 목탁 소리를 마음속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절집을 지으면서 건물에 목수의 이름을 새길 여지는 없다. 더욱이 사찰 불사는 수도의 과정이기에 자신의 수고를 드러낼 이유도 없다. 그러나 목수는 용이 물고 있는 목탁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이곳을 지나치려는 사람들과 바람처럼 대화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정재철 (부안이야기 이사)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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