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부안독립신문을 통해서 상여소리유감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이후에 김판술제 상여소리를 전승하셨던 대목장 김정락 선생님을 모시고 부안국악원 회원들이 한 달여 동안 상여소리를 배웠었는데,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이 남아 부안 전통 상여소리의 전승자라 할 수 있는 고 김판술 선생의 육성 테잎을 구하려고 여러 경로를 통해 수소문을 한 결과, 경상북도 안동에 거주하는 민속학자 분께서 소장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부안독립신문에 “부안문화의 밥과 꽃”을 연재하시는 정재철 선생의 도움으로 육성자료를 받게 되었다. 본 지면을 통해서 선뜻 자료를 내어주신 안동에 이영금 선생과 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애써주신 정재철 선생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참고로 ‘김판술선생 부안상여소리’는 전 부안여고교장이셨던 김형주 선생께서 1981년도에 채록한 자료임을 밝혀둔다.
상여소리란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상여소리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의 편견으로 일상에서 부르지 못하는 부정적인 소리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하는 상여소리도 있는가 하면 이미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상여소리도 있다. 국가에서나 민간영역에서나 더 이상 금기시하는 부정적인 소리가 아닌 엄연한 전통문화로서 자리매김 한 것이다.
문화란 대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담론이요 흔적이다. 그 문화가 켜켜이 쌓여서 역사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상여소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무형의 유산이다. 
부안상여소리는 어느 원로 국악인의 말처럼 애절하고 처량한 비장미는 나라 안에서 으뜸으로 치는데, 우리의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내팽개치고 방치한다면 청맹과니나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민간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부안상여소리의 맥을 이어가야 하겠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일은 지난 6월에 부안상여소리의 마지막 선소리꾼이라 할 수 있는 변산에 거주하고 있는 김판동 선생을 찾았다. 선생은 현재 목수 일을 하는데 상여소리는 김정락 선생으로부터 전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렵지만 선소리를 전수할 수 있는 공간 확보, 전수생 및 상두꾼 모집을 통한 인원확보의 어려움이 남았는데, 몇 년 전 김정락 선생으로부터 선소리를 배우면서 느낀 점은 인원확보의 어려움이 제일 크다는 점이다. 여느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상여소리가 의식요이며 집단 노동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본다. 그런데 모두가 상여소리의 복원과 계승발전을 해야 된다는 생각들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상여소리의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그런지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은 편이다. 상여소리의 인식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여소리가 더 이상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민요의 갈래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부안상여소리의 복원 계승발전을 위한 방법으로는 첫째, 자료 확보와 선소리꾼의 확보 둘째, 행정의 지원 셋째, 상두꾼 및 선소리 양성반의 확보 등인데 고 김판술 선생의 육성 자료와 선소리꾼의 확보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있고 나머지 행정의 지원과 상두꾼, 선소리양성반의 확보 등이 당면 과제로 보인다. 이런 문제점들이 하루아침에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자연스레 부안상여소리의 재현을 위해서 다 같이 힘을 모으고 노력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부안의 문화유산을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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