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산이가 갑자기 다리를 못 쓴다.” 어머니한테서 걸려온 전화다. 네 마리 개를 키우는데 이제 여덟 살이 다 된 둘째 녀석을 말하는 거다. 출근 때만 해도 온전했는데 갑자기 왜? 회사에 묶여 있는지라 얼른 휴대폰으로 CCTV를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카메라에서 녀석은 뒷다리 한 쪽을 땅에 딛지 못하고 깽깽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마당에서 자유로이 풀어 키우는 녀석들이라 워낙 활동량도 많고 특히나 산이는 그 짧은 다리로 어찌나 날쌘지 뜀박질은 단연 1등인데 그런 녀석이 깽깽이걸음을 하니 엄마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이 득달같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팀장님, 저희 집 개가 아침까진 멀쩡했는데 갑자기 뒷다리를 전혀 못씁니다. 어머님이 놀라서 전화가 왔어요! 반차를!”
“그래, 그래. 어서 가.” 결연한 의지를 담고 말씀드리니 역시나 결연하게 오케이 해주셨다.
큰일은 아닐 거라 믿으며 녀석을 데리고 가까운 동물병원엘 갔다. 하필이면 털갈이 시즌을 맞은 산이는 진료실부터 시작해 여기저기 털들을 뿜어냈고 난 민망함에 그저 물티슈로 닦는데 여념이 없었고, 그리고 선생님은 십자인대파열이 의심된다 하셨다. 십자인대파열이라, 그런 건 농구선수들한테나 있는 거 아닌가요? 인대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파열이라니! 그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긴 체공시간을 자랑하며 점프와 뜀박질을 했을 뿐인데 십자인대 파열이라니! 수술밖엔 답이 없고 설상가상 이곳에선 할 수가 없는 수술이란다. 전주에 소재한 병원을 알려주시며 지금 갈 수 있냐 물으셨고 내가 전부인 녀석이 그 지경이 됐는데 난 당연히 앞뒤 잴 것이 없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요, 그냥 집에나 갑시다, 제발요.”라고 말하는 듯 겁먹은 눈을 해선 그래도 나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용기를 다 끌어내고 있는 산이는 차 안에서 미동도 없이 얌전했다.
긴 대기시간, 수술 전 필요한 많은 검사와 수술까지. 낮에 가 저녁 늦게야 끝이 났다. 녀석과 잘 어울리는 보라색 압박붕대가 두껍게 감겨있어 흡사 깁스를 한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후 처치는 부안에서 할 수 있어 그 길로 나서면 드디어 끝나는구나. 물론 병원비 백 여 만원을 결제하면 말이다. “몇개월로?”, “체크카드예요, 그냥 다 해주세요.” 쿨하게 말했지만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지 않았을까, 카드를 손에 꽉 쥐고 있지 않았을까.
칠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산이가 산이가 아니었을 때 녀석을 처음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에서 데려온 백구 바다 녀석이 이미 외동으로 차지하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녀석의 치명적 귀여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셨다. 이 집, 저 집 파양 당하며 떠도는 신세였는데 결국엔 우리 집에 안착을 한 것이다. 중성화 수술도 잘 이겨내고 실밥 풀고 돌아오는 길엔 그 먼 거리를 오로지 나만을 의지해 함께 걸어왔다. 이 세상 예쁘고 좋은 말들은 모두 산이 차지라고 반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수술이 수술인지라 정상으로 돌아오기 까진 짧게 잡아도 두 달 이상이라고 했지만 자꾸 조바심이 난다. 혹여나 이대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든다. 하지만 녀석은 이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여전히 아픈 다리는 아랑곳 않고 뜀박질에 여기저기 다 참견하며 언니 노릇을 하고 있다. “산아, 조심 조심!! 다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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