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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민중사37-노태우 정권과 새만금대개발 및 생명으로의 삼보일배 장정
개발에 맞선 생명의 삼보일배의 깃발

“기억하라. 1987년...!!” 참으로 우리가 전에 살펴본바와 같이 1987년은 위대한 민권승리의 빛나는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인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인 자칭 ‘보통사람’ 노태우가 당선되어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아닌 당연하게 김대중 혹은 김영삼의 통합에 의한 야당지도자의 대통령 당선이 아니라 두 지도자와 진영의 분열에 의하여 어부지리로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다시 대통령은 민자당의 노태우가 당선된 것이었다.

노태우의 가장 획기적인 선거전략과 호남민심의 획득을 위한 것은 새만금 사업이었다. 1987년 12월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느닷없이 새만금 사업을 발표했다. 바다에 방조제를 쌓아 대규모 농업용 간척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그에게 가장 취약했던 호남지역 득표전략이었다. '호남 푸대접론'이 선거쟁점으로 떠오르자 가장 획기적인 단군이래의 국토개발공약을 급조했던 것이다.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은 물론이고 환경파괴와 자연훼손에 대한 검토도, 여론수렴도 없이 서둘러 발표하여 공사과정에 많은 논란과 함께 말썽이 일어났다.

2003생명평화 65일간의 삼보일배 순례 장정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단군 이래 최대 간척 사업’으로 공약해 1991년 11월 첫 삽을 뜨며 방조제 공사에 돌입했지만 곧 바로 환경단체와 종교계,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사업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19년 뒤 2010년 새만금 33.9㎞의 방조제가 준공되어 현재 6대 핵심 용지-산업연구ㆍ국제협력ㆍ관광레저ㆍ농생명ㆍ환경생태ㆍ배후도시가 조성 중이기는 하나 매립 속도 늦다 보니 기업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의도 면적 140배 규모의 새 농지를 만들겠다는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후 20년 만이다. 애초 임기 내 완성을 약속했지만 무려 13년이 더 걸렸다.

탄핵을 당한 전 대통령 박근혜는 2012년 10월 “새만금은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모두 지원하고 힘을 합쳐서 꼭 성공하도록 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역시 새만금 전담기구와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약속했지만 영남편중의 박근혜 정권은 호남민중에 약속한 새만금개발의 추진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즉 노태우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 공약에 호남민심을 달래는 용도로 썼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모르쇠이고 순위에서 뒤로 확 밀리고 사실상 도외시한 것이었다.
국민의 정부의 김대중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이 호남에 대한 호의가 있을지라도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들의 정부의 철학과 세력의 문제로 인한 생태와 갯벌 보존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주장과 소송에 발이 묶여 개발계획을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했다. 때문에 그래도 호남을 대표하고 지지하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이 새만금사업 추진에 좀 더 가속화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가속화보다 현실적으로는 반대쪽으로 가는 바람에 어려워진 면도 있었다. 새만금사업은 사실상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기에 막상 현실적으로는 정체되어 ‘잃어버린 민주 10년’이란 비난이 높았다.

새만금 속도전을 공약 및 국정과제로 걸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문재인 정부에서의 새만금사업 성과가 주목된다. 사실 원래 새만금 간척은 서해안 갯벌 생태계 파괴 및 인근 어민들의 생계를 빼앗는다는 환경단체, 사회단체의 반대가 굉장히 거센 정책이었다. 당장 부안군의 적나라한 현실 그대로 새만금 간척 이후 왕년의 부안의 천혜의 인근 갯벌 어업이나 관광업은 말 그대로 막장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좌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결국엔 모두 새만금 간척 사업을 강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원래 시작부터가 태생적으로 호남에 큰 약점을 지니고 있던 전두환을 승계한 노태우 정권의 호남 민심 포섭을 위한 일종의 정치전랙적 거대한 개발계획이었고, 전북도청 입장에서는 지방정부 차원의 숙원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이를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면 일부 생태, 환경단체와는 합세할 수 있지만, 전북이라는 한 커다란 지역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던 것이 참으로 어려운 난제인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차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에서 상당한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이 거대한 새만금 국책개발사업은 결국에 지리한 과정을 경과하면서도 끝까지 진행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지난 대선국면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새만금 사업을 “대통령이 직접 새만금 사업을 챙기겠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만금 사업 지원 의지가 어느 정권보다도 구체적인 가운데, 이번에는 속도를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30여 년 동안 지지부진 했던 새만금 개발에 탄력이 붙을지, 기대를 걸게 되면서 아울러 환경파괴가 아닌 생태와 환경을 충분히 배려한 새만금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는 새만금 개발에 대한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용지 매립 작업을 공공 주도로 전환해 사업을 촉진하고 신항만과 국제공항, 배후단지 등 필요한 인프라 시설을 조기 구축해 개발 촉매제로 삼을 계획이라며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에 한층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새만금 용지 매립을 공공 주도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새만금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국제공항이나 배후단지는 2021년 이후로 시기만 잡아놓았을 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새만금청은 신설될 예정인 청와대 전담 조직과 협의를 통해 신항만과 국제공항, 배후단지 등 조성공사를 앞당길 방침이다. 그간 새만금 사업의 문제는 정부의 추진력 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8월 17일, 세계 스카우트 연맹에서 개최하는 국제 야영 대회인 2023 세계 잼버리 대회를 새만금에 유치하게 되었다.

새만금개발사업이 공표된 이래 그 동안에 수많은 환경 생명운동부분에서의 우려와 비판이 참으로 많았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일이 2003년에 '육신의 3보, 영혼의 1배'로 새만금의 현장 전북 부안 해창에서 서울까지의 참으로 쉽지 않은 삼보일배의 장정이 이루어졌었다.

2003년 3월 28일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시작된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3보1배'가 시작되어 6월 31일 오후 2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개최된 '새만금사업 중단촉구를 위한 범종교인 기도회'를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쳤다. '육신의 3보, 영혼의 1배'로 천주교 부안성당의 문규현 신부, 조계종 화계사의 수경 스님, 원불교의 김경일 교무, 기독교의 이희운 목사 등 네 명의 성직자들이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함께 걸어온 800리길. 자동차로 달리면 겨우 4시간 걸리는 길을 하루 평균 5.8km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려 65일간에 걸쳐 310km를 이어온 것이다. 실로 놀라운 정신과 의지력의 대장정이었다. 오뉴월 작렬하는 땡볕 아래서 '세 걸음에 한번 절'하는 '3보1배'는 그 자체가 초월적이며 헌신적인 종교적 신앙을 토대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네 명의 성직자들은 가히 목숨을 걸고 나선 것이다. 종파를 초월하여 전북 부안서 서울까지 한 걸음으로 내딛어온 이번 '3보1배'는 신념과 가치를 위하여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며 부안민중사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일이라고 할만하다.

3보1배단과 함께 500여 명의 인원이 연인원 1만5천명의 인원이 함께 행진하였다. 서울에 마침내 도착한 삼보일배순례단은 오전 서울 안국동 조계사에서 출발해 청와대-세종로-광화문을 거쳐 행사장에 도착하였다. 마침내 4명의 성직자가 연단에 오르자 1만여명의 참가자들은 끝없는 박수로 이들의 고행에 찬사를 표했다.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닌 일을 신앙의 힘을 빌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참석자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한 순례 후 병원의 문신부

4명의 성직자들도 그렇지만 이들의 뒤를 따르는 종교인, 일반시민들의 '동참'은 더욱더 감동적이었다. 시청광장은 이 시대 모든 생명과 환경을 사랑하는 시민과 종교인들의 집결장과도 같았다. '새만금살리기운동'이 모든 종교인, 신도와 시민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1부 행사에서 노래를 선사한 가수 정태춘은 자신이 고향 경기도 평택 갯벌에서 자랐다고 소개하고는 "내 노래 서정의 반은 갯벌에서 나왔다"며 "갯벌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두달여에 걸친 '고행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꿈쩍도 않았다. 여전히 정부로서는 새만금 갯벌을 막아 수많은 개발과 농지 등으로 사용할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3보1배'는 새만금살리기운동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당국자들은 직시하고 이제라도 이 문제를 생태와 환경문제를 깊이 감안한 새만금개발의 완성으로 추진하면서 철저히 살펴야할 것이다.

무려 길고 긴 65일간 험난한 길을 걸으며 시청으로 왔지만 삼보일배 순례단은 마지막 고난을 겪어야했다. 경찰이 광화문으로의 평화로운 행진을 막아선 것이다. 오후 4시50분경, 힘겹게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 도착한 네 명의 성직자들은 말이 없었다. 둥글게 둘러앉은 이들 성직자들의 가슴에는 이미 묵언의 이름표가 사라졌지만 깊은 묵상은 계속되었다.
오후 5시경, 열린시민공원에서는 녹색연합 사무처장의 사회로 마지막 무대가 열렸다. 네 명의 성직자들이 무대 앞으로 이동하는 동안 참가자 모두가 일어나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란 제목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이어 묵상에 잠긴 네 명의 성직자들을 대신해 천주교의 원로 사제인 문정현 신부가 무대에 올라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많은 운동을 해봤지만 이렇게 위대한 운동을 익히 해본 적이 없다. 수경 스님이 쓰러지셨을 때 스님이 운명하셨나 해서 저는 자꾸 스님의 맥박을 잡았다. 간헐적으로 뛰고 있었는데 그때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른다. 이제 전국민의 의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분들의 삼보일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모았기 때문에 이제는 희망이 보인다. 우리는 개발 패러다임에서 생명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기로에 섰다. 이제 여기 모인 여러분이 합심해서 생명을 살려나가자."
이날 행사를 마치며 참가자 전원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큰절을 나눴다. 이것으로 65일간의 삼보일배 대장정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수경 스님은 조계사로 돌아갔다.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는 참가자와 일일이 포옹을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이 극적인 삼보일배의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문정현 신부가 설파한 ‘개발의 패러다임’과 진정한 ‘생명의 패러다임’이 대립, 갈등,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상생과 보완, 통일이 되는 미래의 새만금의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새만금 개발

2004년 11월 13일 변산 격포항에서 전국적 행사인 부안생명평화문학축전이 고은시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평화문학포럼 주최와 민족작가회의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전국에서 고은, 박영근, 최자웅, 이원규, 김창완, 박찬, 김동현, 최종수, 박두규, 안찬수 시인 등이 참석하여 새만금 생명의 바다를 위한 시낭송을 하였다.

삼보일배 거북이처럼 기고 기어서/ 머나먼 서울길, 벌레처럼 아파하며 눈물 흘리며 기어가던 길/ 오늘의 중국을 있게 만든 이만 오천리 대장정이 중원대륙의 눈물과 기도였다면/ 눈물로 씨를 뿌린 다 기쁨으로 거두는 것처럼/ 우리의 삼보일배는 이 새대의 참 혁명을 위한 고요한 하심의 장정 길이었으리.../ 옛 동학년의 못 이룬 개벽의 꿈에 취하여/ 또다시 몰려오는 서해 변산 앞바다의 저녁 만조의 파도 앞에서/ 나 고요히 무릎꿇노라. /격포의 깍아지른 포구에 그대의 달이 슬프게 떠도 /칠산포에서 궁륭의 위도 앞바다 흔들리며 떠나가던 상여 뱃길 따라 흘러도 /이제 옛 동학의 스러진 처절한 개벽의 꿈 /삼보일배의 만년 거북이의 생명과 꿈틀거리는 미물 지렁이의 넋과 꿈으로 환생하라./ 금만경 가없는 지평선에 /그대로 향한 순백의 그리움 아득한 꽃등불로 타오르라.
-최자웅 시인 "옛 해적의 바다여, 이제 생명의 바다로 꿈틀거리며 환생하라"

거기에 늘 어스름 찬바람이 일던 어업조합 창고가 있었다/ 거기에/ 칠산 바다 참조기 궤짝이 밤새워 전깃불 아래 쌓이던 /부둣머리 선창이 있었다/ 거기에 깃물에 쩔어버린 삭신이 조생이 한 자루로 뻘 밭을 밀고 가던/ 홀몸 조개미 아짐/ 읍내 닷새장 막차를 기다리던 감나무가 있었고 /흉어철이 들수록 밤이면 혼자서 가락이 높던 갈매기 입이 있었다./ 지금은 폐항도 아닌/ 신작로만 간신히 살아 나를 불러 세우는 마을/ 바닷소리 속으로 비/ 이백년 아이를 꺾어 버린 팽나무/ 영당 자리에 비/ 수십 킬로 뻘을 질러간다는 저 방조제 끝이 어딘지를 나는 묻지 않는다/ 따는 듯 붉은 노을이 내겨/ 바다도 집들도 바닷바람을 재우던 애기봉도/ 온통 환하게 몸 속을 열어 보이던 그때를 찾아 걸어 들어갈 뿐이다./ 빗속으로 물보라 엉키는 바닷가 철책을 지나/ 깃벌을 건너
                           -박영근 시인 "해창에서"

신부, 시인, 종교사회학 박사.
전북 출생. 중앙대 정경대 졸, 한국신학대 수학. 서강대 대학원 졸. 독일 보쿰(Bocum)대 신학박사과정 수료(종교철학, 기독교사회이념 전공). 성공회대 사회학박사(사회사상 및 종교사회학 전공)

최자웅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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