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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꽃49-옛날 영단의 삼손 할아버지

뜸한 시내버스 기다린다
옛날 선술집 앞
주막집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

약산이네 매가리간이 해방 후 영단으로 바꼈는데
그곳에서 힘깨나 썼다는 할아버지
이제는 골병든 몸 지지러
물리치료 다니신다
수욜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옛날 삼손 할아버지
안녕하신가하고 창밖으로 고개한번 돌리고

'건강하게 오래사셔요~이, 삼손 할아버지'

이 사진은 2014년 7월에 직장 가던 길에 찍었다. 그리고 그 날 위와 같은 글을 적어 놓았다. 수요일 아침에 만나는 할아버지는 항상 웃는 모습이다.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장소는 백산 삼거리에서 평교 가던 길가의 백룡정미소 옆이다. 한전 백산출장소 앞이라면 더 잘 알 수 있는 곳이고 전에는 선술집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눈독을 들였던 곳 중 하나는 백산 삼거리였다. 이곳은 수로와 육로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와카야마 사카에치로(若山榮治郞,약산영치랑)는 백산에 정착하여 백산미곡상조합장 등을 하며 백산면의 유지로 활동했다. 약산의 사업 분야는 정미업·백화점·농사경영 등이었고 그가 경영했던 정미소를 지역 사람들은 ‘약산이네 매가리간’이라고 불렀다.
 '매가리간 3년이면 벙어리도 말을 한다'고 할 정도로 매가리간에서는 험하고 강도 높은 노동이 계속되었다. 해방이 되자 약산이네 매가리간은 조선식량영단이 되었고 줄여서 영단이라 불렀다. 이곳에서는 정부 양곡을 수집하고 관리했다. 해방 된 뒤 한참 후에도 이곳 노동자들은 헤어진 옷을 입고 목에는 하얀 무명베를 걸친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가 쌀 싣는 트럭이 오면 무명베를 어깨에 걸치고 가대기 하는 모습을 이곳 사람들은 기억한다.
삼손 할아버지는 이 영단에서 젊은 날부터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 궁금해서 할아버지의 요즘 안부를 주변 분들에게 물었다. 할머니와 함께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듣는다.
지금은 어른들이 몸이 불편하면 요양병원으로 가신다. 요양병원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늘려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삶의 질도 좋아졌는지 묻는다면 답하기가 어렵다. 두 어깨로 힘든 노동을 감당하신 부모님 세대가 어떻게 남은 생을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는 오래된 질문이다. 이것은 부모님의 일만 아니고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 어른들을 위해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험한 시대에 고단한 삶을 산 이 어른들의 증언 채록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위기에 빠진 기억을 붙잡고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이 역사이고, 이것은 중요하고 시간을 다투는 작업이다.

정재철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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