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상관없는 새 기구 만들어야”

지난 20일 부안성당에서 열린 부안의 미래를 여는 토론회에 참석한 주민들이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염기동 기자

지난 20일 부안성당에서 반핵투쟁에 함께 했던 주민들이 모여 ‘부안의 미래를 여는 토론회’를 열었다. 부안항쟁 이후의 논란과 쟁점을 되짚고 향후 전망을 구상하기 위해 열띤 논의가 벌어진 그 현장을 지상중계한다.


선거에 대한 입장 냉정히 되짚어봐야
- 발제 구장회씨

지난 2년간 우리는 ‘반핵·생명·평화·자치’를 얘기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군민들에게, 또 전국 곳곳에서 부안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했던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우리는 과연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부안에서 핵폐기장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핵 없는 세상’, ‘이 땅 어디에도 핵은 안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부안에서 핵폐기장 문제가 끝난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부안반핵투쟁은 어느 한사람의 주도가 아니라 군민 스스로가 결정하고 나서서 싸웠기 때문에 승리했다. 그렇다면 지역의 정치, 문화, 사회 각 부문의 발전을 일구는 주역도 군민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장치를 만들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치를 향해 몇 걸음이나 떼고 있는가.

면별 체육대회나 직장에서 부서별 단합대회를 해도 무엇이 잘못됐고 내년에 무엇을 더 잘할 것이냐며 평가보고서를 낸다. 하물며 반핵투쟁, 그 큰 투쟁을 해놓고도 백서 하나 준비를 못하고 있다.

정치선거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자. 나는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했었는데, 87년 전국적으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이는 스스로의 권리를 찾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부안군민의 투쟁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 뒤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됐고, 노동자들은 당시 일관된 원칙을 주장해왔다. 그것은 노동자후보였다. 이는 정파와 당리당략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정치에서 분열됐을 때 노동현장도 분열됐기 때문에 단일후보를 내놓은 것이다.

부안도 마찬가지다. 더 나은 부안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면서도 계기가 될 수 있는 이 선거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혹자는 정치와는 동떨어진 자치활동 하나를 준비하는데도 뒤통수가 간지럽다고 말한다. 자치모임에서도 누구는 무슨 당, 누구는 무슨 당 식으로 편 가르기를 하게 된다.

부안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데 있어서 내 희망, 내 조직, 내 당의 미래만 쫓아가서는 안된다. 각자의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전 대책위 간부 일부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은 정확히 평가돼야 한다. 또한 이 문제를 비판하는 다른 이들도 자신은 정치적 발전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로 열린 자세로 정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대책위 해산도 많은 비판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많은 논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모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분열과 감정을 버리고 다시 모이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모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신과 약속했던 모든 것들을 조금 더 지켜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전 대책위 집행부 잘못 인정부터"
- 패널 고길섶씨

반핵진영에서 적대적인 불신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 봄 전 대책위 집행부 일부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고 당원운동을 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불신의 골은 사실 반핵투쟁 당시부터 깊어져 왔고 이는 전 대책위 집행부들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본다. 전 대책위 집행부들은 오래 전부터 배타적이고 조직이기주의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이것은 부안의 정치구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와 맞물려 있었고 권력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과정이 지속돼 왔다. 그런 점에서 반핵투쟁 이후 생겨난 부안독립신문, 의정참여단, 부안희망 등이 편향적으로 나아갔다고 본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비민주적인 모든 요소에 반대하는 결자해지의 정신을 가지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몇가지 주장을 하고 싶다.

먼저 전대책위 집행부 들은 자신들의 행보를 합리화하려 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반핵민주항쟁의 지도부라는 공인으로써 열린우리당 운동을 포기해야 하고, 설령 가더라도 공론장을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반핵부안 사이트, 부안독립신문 등 부당하게 막힌 공론장을 공공화하고 민주화해야 한다. 반핵기금에 대한 총체적인 결산보고, 핵폐기장 보상과 관련한 전 지도부의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


“‘주민자치’는 끝나지 않아
- 패널 서대석씨

부안항쟁을 농사에 비유한다면 들에 대풍을 이뤄놓고 결실을 어떻게 거둘 것인가 추수 대책을 세우는 데만 망설이는 꼴이 아닌가 생각된다. 늦었지만 결실을 다시 추스르는 일이 필요하다.

현재 부안은 반핵싸움에서는 성공했지만 찬핵과 반핵, 그리고 반핵 내부의 분열로 크나큰 상처를 안고 있다. 군민 화합에 앞장설 새로운 화합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 싸움에서 생겨난 수많은 구속자와 부상자들을 감싸주고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핵에너지정책을 바꾸는 싸움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곳에서 반핵문제가 나오면 고개가 떨어뜨려질 정도가 됐다. 우리가 받은 것 이상으로, 어렵게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핵정책 전환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반핵기념관 건립, 군민의날 제정, 그리고 백서발간 등을 추진해 부안항쟁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부안반핵싸움은 끝났지만 주민자치는 끝나지 않았다. 지속적인 군정감시 의정활동을 통해 주민자치의 뜻을 행정에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진정한 시민운동에서 시작된 반핵싸움이 마무리 과정에서 지방선거와 연관되다보니 분열이 왔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진정한 부안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공론의 장서 불만 터 놓고 얘기를
- 패널 이오순씨

다른 분들도 지적했듯 전 대책위를 해산한 후 새 조직을 꾸렸어야 했는데 이를 못했다. 그때부터 잘못 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이는 그간 조직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실수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난 뒤 반핵 주민들 간에도 여러 헐뜯는 소리가 나오다 보니까, 밖의 손님을 대하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내년 지자체 선거라는 정치문제가 끼어들면서 판이 그렇게 된 것 같다. 나는 기존 정당이나 새 조직 사람들이 제발 기득권을 포기하고 양보함으로써 부안 사회를 평정하길 바란다.

또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촛불집회를 하자, 만민공동회를 만들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대책위가 성급하게 해산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왜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다시 밑바닥으로부터 힘을 추슬러야 한다. 물론 정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생활이 정치이니까. 그러나 정치꾼들이 하는 건 안된다. 정치세력화는 부안군민의 힘으로 돼야지, 기득권층이 설치는 것은 아무런 성과도 없고 그간 싸운 것을 허위로 만들 뿐이다.

부안에는 여러 당과 조직들이 있다. 이들이 각자 불만을 갖고 있는데, 뒤에서 토로하지 말고 제발 큰 공론의 장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또 이런 공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조직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


개인 삶 속에서 정치 만들어가야
- 패널 김효중씨

말이라는 것은 생각을 전달하는 구체적인 수단이다. 그리고 말은 뱉은 만큼 큰 파괴력을 갖는다.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다. 나 또한 반핵싸움 과정에서 뱉은 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흔히 사랑과 생명, 자치를 얘기할 때, 너의 사랑, 너의 생명, 너의 자치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내뱉은 이 말들이 내 삶에서 어떠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부안 주민들이 자신의 말들을 어떻게 하면 자기 삶 속에서 먼저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먼저 기구와 정치가 있은 뒤에 자기 삶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삶에서 어떤 것을 정치와 기구를 통해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핵폐기장 문제가 터지기 전에 부안을 떠나려한 적이 있다. 그 뒤 핵폐기장 문제를 맞닥뜨렸고, 그 2년간은 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귀중한 경험이었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이라는 시처럼, 부안의 정신은 어떤 한 사람이 파내려고 해서 파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경험은 어느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부안 군민의 치열한 삶은 어느 몇몇이 어떻게 한다고 없어질 수 없다. 그래서 부안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합토론
고영조씨 “원래 정치인…다양성 인정해야”
김정씨 “핵폐기장 사태 주역이 누구였나”


발제와 패널토론이 끝난 뒤 마련된 토론에서는 대책위 해산 과정의 타당성, 그리고 전 대책위 일부 집행부의 열린우리당 입당 문제에 관한 신랄한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얼마 전 열린우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고영조 전 대변인이 토론에 참석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해 이목을 끌었다.

토론 첫머리에서 고 전 대변인은 “초기 핵폐기장 싸움을 준비하던 당시 나는 개혁국민정당(열린우리당으로 합류) 지역위원장으로써 대책위에 참가했다. 대책위에 참가한 정당은 한나라당부터 민주노동당까지 정치적 폭이 다양했다”며 “왜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열린우리당 입당 문제만) 비판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사고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대책위 해산 뒤 생업으로 돌아가자고 했다”고 덧붙이며 정치인 신분으로 돌아간 것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정씨는 “정치인이 생업이라면 대책위 소임을 그만두고 물러났어야 했다”며 반박했다. 김정씨는 “최근까지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핵폐기장 적극 유치를 공표했다. 부안에 핵폐기장 사태를 몰고 온 주역이 누구였는가”라며 반핵과 열린우리당이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 특정 정당의 이해와 관련 없이 반핵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독자후보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구체적인 토론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또 대책위 해산 과정에 대해서는 대책위 전 집행부와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책위가 주민들의 동의 없이 성급하게 해산됐다는 일부 주민들의 비판에 전 집행부 관계자는 “생계문제 등 개개인의 어려움으로 군 대책위가 온전히 운영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읍·면별로 새로운 자치운동기구로 전환하자는 대안을 갖고 해산했으나 그게 잘 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부안희망 등 새로 만들어진 자치단체가 특정인의 것으로 비쳐지면서 외면을 받았다”며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새 기구 준비체계에 대한 윤곽을 갖춰가면서, 반핵항쟁의 교훈을 잊지 않고 핵폐기장 논란이 일고 있는 다른 지역에 구체적인 연대를 해야 한다는 데에 참가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참가자들은 28일 군산에서 열리는 대규모 핵폐기장 반대집회에 참가할 것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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