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에 마련된 홍성모 화백의 작업장

우리 고장 출신 수묵담채화가 오산 홍성모(58) 화백은 1년 전부터 부안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산(悟山)은 홍 화백이 국선에 입선한 직후 아산 조강원 선생이 지어준 호다. 7경산수를 그리는 까닭도 있지만, 산을 깨달으라는 호 때문일까? 홍성모 화백은 한동안 산에 푹 빠져 살았다.
“부안 백산 평야에 살다가 80년대에 강원도 영월을 가보니까 온통 산과 계곡이더라구요. 어느 날 청룡포에 올라갔는데 물안개가 싹 피어오르는 것을 봤어요. 참 무릉도원이다. 논에서 해가 뜨는 곳에서 살다가 구릉지대 같은 곳을 보니까 이건 변화 없이도 있는 그대로 다 그림의 소재가 되겠다. 그때 강원도의 매력에 빠져서 폐교를 얻어가지고 5년을 살았죠.”
홍성모 화백은 한동안 강원도 영월, 평창, 정선을 주로 그렸다. 웅장한 산이 주는 기운과 첩첩산중에 대비되는 하늘과의 여백이 홍 화백의 그림 세계와 일맥상통했던 모양이다. 실제 풍경을 스케치해서 그리는 스타일이다 보니, 홍 화백 자신이 한 자루 붓이 되어 전국의 풍광 좋고 유명한 산에 발도장을 찍으며 다녔다. 물론, 내소사, 채석강, 변산... 절경이 많은 고향도 자주 찾아와 그렸다. 하지만 요즘처럼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만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지난 5일 부안독립신문 사무실에서 홍성모 화백이 인터뷰하는 모습.

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

홍 화백은 30년 전 서울로 올라갈 때 자신의 명함에 녹색글씨로 ‘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라고 써 놓았다. 지금 명함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홍 화백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지만 화가로서 절경이 많은 고향 부안에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안에 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부안이 그렇게 멋있는 동네냐? 그렇다. 부안에 살고 싶다. 그럼 귀농귀촌해라 그러죠. 하하. 1년 전부터 부안을 소재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몸이 원래 약하고. 조금 있으면 손도 떨리고, 눈도 침침해지면 필력도 그렇고, 체력도 더 나빠지잖아요. 그 전에 고향 풍경도 한번 그려보자 해서 부안 이야기가 있는 그림 작업을 하고 있어요. ”
홍 화백은 사라지는 부안의 정자를 스케치도 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오랫동안 눈에 익은 집들, 마을 이름의 유래나 명승지, 멋진 풍경이지만 개발로 인해서 사라지는 것들을 동네 어른들에게 꼬치꼬치 물어보고 때로는 메모해서 글로 썼다. 이렇게 외지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을 글과 그림으로 작업해 그간의 작업을 ‘부안이야기’라는 곳에 네 번 연재하기도 했다.
지난 오복마실축제 때는 행사장에서 3일간 ‘부안8경 사계 바람바람 부채전’이라는 전시회도 열었다. 산채수묵회 회원 중 291명의 화가들이 부안 풍경을 그린 작품들을 전시했다. 홍화백이 회장을 맡는 동안 고향에서도 한번 전시회를 열고 싶어 추진했다. 축제 때 34명의 회원들을 행사장으로 초대해 오픈식도 갖고, 부안 일대를 스케치 하며 부안의 빼어난 자연 풍광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오복마실축제장에서 열린 부안8경·사계 바람바람 부채전.

13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보답

홍화백은 태어나면서부터 심장병을 앓았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거나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하고 싶은 것 중,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글과 그림이었다. 그렇게 해서 원광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 들어가 계속 그림을 그리던 중 1984년도에 심장병이 악화되었다. 홍 화백의 소식을 들은 학우들이 선뜻 천 원 씩 모금운동을 벌여 수술비를 마련해 주었다. 학우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홍 화백은 대학을 졸업하고 돈이 생기면 단 한 명은 꼭 보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첫 번 째가 상서면 고잔리에 사는 아이에게 해준 심장병 수술이었다. 건강하게 자라 지금도 종종 연락이 온다고 한다. 그 이후 홍화백은 인천 길병원 의료팀과 무료검진을 다니며 꾸준히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시작했다.
“졸업 동시에 국전에 특선했어요. 그때 그림이 참 잘 나갔어요. 후원회도 조직하고, 구족화가와 같이 카드 연하장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이랑 후원금도 걷어서 도왔죠. 제가 약도 다 사가지고 갔어요. 그때는 의약분업이 없을 때니까. 인천 길병원 이길녀 여사가 의료팀을 만들었죠. 의사 둘 간호사1명, 전 상담원이고요. 기사 한명 이렇게 움직였어요. 부안 JC에서 장소랑 시간 정하고 홍보하면, 우리가 내려와서 검진하고 2차 진료가 필요하면 버스로 모아서 다시 길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 하구요. 다 사비로 했어요. 부족한 것은 심장재단 뽀빠이 이상용 씨 쪽에서 도와주고. 그러다 IMF 때 먹고 살기 어려워지니까 중단됐죠.”
학우들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보답으로 한 명만 돕는다는 것이 13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 50명의 수술을 해주었다.

이제는 고향에도 보답을 하고 싶다

홍성모 화백이 부안의 사계절을 주제로 1년간 작업해온 56m짜리 대형 작품, 현재는 마무리 작업중

 

“부안은 나에게 뼈와 살을 준 곳이잖아요. 한 때는 강원도 영월로 가려고 집도 장만했었죠. 영월은 일주일에 2~3일씩 작업하고, 친구들도 더 많고, 바다만 없을 뿐이지 편안하긴 해요. 부안에는 집도 없고 아는 사람도 얼마 없어요. 고등학교 때 떠나서 원광대 가고, 바로 서울로 떠났으니까요. 그래도 타향보다 고향에 족적을 남기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더라구요. 나이 먹으니까 그런가 봐요. 젊을 때는 그쪽으로 갔는데 지금은 고향이 좋아요.”
부안에도 좋은 경치가 많아 자주 그림을 그리긴 했다. 그래도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을 한 것은 10년 전부터였다. 부안에 뭔가를 남기고 싶고, 외지 사람뿐만 아니라 부안 사람도 바다에서 본 풍경은 잘 모를 것 같아 이런 것을 그려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고향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지난해 부안군청에 제안을 했다. 부안의 사계절을 주제로 56미터 짜리 대작을 그려 기증하겠다는 뜻을 건넨 것이다. 부안군청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작업장을 마련해 주어 현재는 곰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평일에는 서울에서 강의를 하고 금요일 밤에 내려와 주말 동안 작업하기를 벌써 1년째다.
“술 때문에 췌장이 안 좋았는데 6년 만에 재발했어요. 작년 11월에 강의를 하다가 쓰러져서 입원했었는데 얼마 전에도 또 안 좋아져서 다시 입원했죠.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 왔다갔다 하면서 무리했나 봐요. 혼자 밥 먹고 10시까지 작업하다 찜질방에서 자고 했거든요. 거기다 바다에서 보는 부안 풍경도 그려야 하니까 낚시배를 타고 열세 번이나 바다에 나가 그림을 그렸어요. 고창 넘어가서는 만돌, 하전리, 부안면에서 물 빠졌을 때 경운기 타고 들어가 스케치도 했죠. 그런 작업들도 조금 무리가 됐던 것 같아요.”
홍 화백이 작업하고 있는 부안의 사계는 56미터 짜리 대작이다. 한 폭이 1m×2m 정도 되는데 모두 28폭을 그려야한다. 두 차례 병원을 입원하면서 늦어지긴 했지만 그동안 부안 곳곳으로 스케치를 다니며 28폭에 사계절을 모두 담아 놓았다. 이제 마무리 단계만 남았으니 70% 정도 작업이 이루어진 셈이라고 한다. 6월말까지 완성해 이후 전시회도 가질 예정이다.
“고향을 위해 뭔가 남기고 싶어 시작했지만 처음에도 무리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몸이 아프니까 괜히 했다 후회도 되더라구요.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여. 시작했으니까 마무리를 져버려야지. 6월에 완성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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