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아무리 예뻐도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은 보기도 좋지 않고 마음도 몸도 불편하다. 조금 아쉽고 불편한 옷을 딱 맞춰주는 정은자 씨(63)는 자신을 리폼 전문이라고 소개한다. 원단으로 맞추는 일도 하지만 주로 옷을 줄인다. 디자인 맘에 드는 것 사려 해도 맞는 사이즈가 없을 때 특히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 주로 맞추고 간다. 어깨선이 처진 것은 올리고 소매 길이나 밑단도 줄인다.
정은자 씨는 29년째 수정수선점을 운영하고 있다. 간판 값이 아까워서 전에 다른 사람이 하던 것을 그대로 인수했다. 그러다 보니 오는 사람마다 딸 이름이 수정이냐고 묻는다. 정은자 씨는 아들만 둘이다.
“애기가 결혼하고 7년 만에 생겼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일찍 오지 어딜 갔다 왔냐? 엄마 눈물 빼게 했냐? 그러니까, 엄마 우리가 어디 갔다 왔어? 큰 애는 암말 안 하는데, 작은 애가 고개를 갸우뚱 해. 하하”
그 아이들이 이제는 훌쩍 자라서 큰아들네는 소방관 부부, 둘째 아들은 기무사에 있다. 고생했어도 자식이 잘 되어 든든하다는 정은자씨의 자식 자랑. 외면하기 어려워 곧이 전한다.
정은자 씨가 처음 수선 일을 하게 된 계기는 70년대 흔한 이야기다.
“공부하기 싫어서. 하하. 우리 나이 때 기술 배우잖아. 아버지가 미장원 기술 배울래, 아니면 양장 배울래? 근데 옛날에 파마 약이 독했잖아. 손에 안 좋으니까 차라리 양장을 다녀야지.”
그때 수선을 맡기러 온 단골손님이 한 마디 내뱉는다. “먼지를 많이 먹잖아.”
“근데 나는 폐 사진 찍어봤는데 깨끗하데. 그래도 돼지고기 많이 먹으라고 하는데, 잘 안 먹어. 살 찌니까. 앉아만 있으니까 살이 쪄.”
장은자 씨는 전주에서 왔다. 학원에서 양장 기술을 배운 후 친구와 의상실을 하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부안으로 오게 됐다. 결혼 후 10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 수정수선집을 인수하게 됐다. 처음에는 용돈벌이나 하려고 나왔는데 반대로 남편이 용돈벌이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가 좋았지. 그때는 수선집이 세 집뿐이었거든. 지금은 20여 집이나 된다니까. 일감이 산더미 같이 쌓여가지고 날밤 새서 일했지. 지금은 그날 들어온 것만 하고 있지.”
그만큼 장은자 씨의 수선점이 잘 됐다.
“얼굴 보고 싶어서 들렀어.” 백산에서 온 ‘손님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20년 넘은 친구인데 겨울에 보고 오랜만에 얼굴을 본다고 그간 아쉬움을 전한다.
“참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지. 시부모한테 잘 하고, 오래 아프셨는데 병간호도 잘했어. 신랑한테도 잘 하고. 어떻게 여기를 인터뷰 하러 잘 찾아왔데. 솜씨가 좋아. 잘 해. 옷을 잘 줄인 게 친구가 되었지. 못 줄이면 친구가 안 되었지.”
장은자 씨도 다른 손님, 친구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해도 ‘손님친구’는 인제 가야된다면서 한사코 사양한다. 문 밖에 선 채 30분 쯤 얘기를 나누다 간다.
장은자 씨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성격도 생김새도 사뭇 다른데, 세월이 맞춰 준 것처럼 손님, 친구, 손님친구로 맞춤맞다. 시장 안인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오가는 말, 분위기가 정겹고 편안하다. 
8년 전에 단골 할머니 한 분이 한동안 안 오시길래 친구들과 격포 가는 길에 장신포 수주마을에 들렀다. 댁을 몰라 이집인가 저집인가 돌아다니는데 빨랫줄에 정은자 씨가 만든 옷이 쭈욱 걸려 있었다고 한다.
“맞다! 여기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더라고. 할머니가 그 연세에도 무릎 수술을 하고 누워 계시드라고. 할머니가 키가 작아서 파자마까지 맞추거든. 그때 맞춘 헌 옷을 지금도 입고 오셔. 누가 옷 이쁘다 그러면 이 집에서 30년 전에 맞췄어. 이집 주인 아가씨 때부터 단골이어 그래. 그럼, 할머니 저 장사한 지 30년 안 됐어요. 아가씨 때는 여기서 장사 안 했어요. 그러면 막 웃어. 하하!”
장은자 씨의 좋은 솜씨라는 것이 옷 맞춰주는 것 못지않게 마음도 맞춰주는 넉넉한 인정을  가리키는 말인가 보다.
“건강만 괜찮으면 몇 년 만 더 하고 싶어. 저번에 아들이 엄마 언제부터 안경 쓰고 일했어? 한 3년 됐나 보다. 우리 엄마 큰일 났네. 그러더라구. 이 일은 눈이 안 뵈면 못 하잖아.”
정은자 씨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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