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는 터줏대감들이 많다. 특히 이불집, 한복점, 수선점에는 40년 넘게 가게를 지켜온 상인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중앙통길에 있는 경주이불 최정례 씨(69)는 24살에 인영한복집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45년의 세월이 흘렀다. 스물여덟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후 옷 재단할 때 쓰는 하루핀(시침바늘)이 위험할 것 같아서 이불집으로 바꾸게 되었다.
“하루핀이 위험하잖아. 옷 한 벌 지으려면 수십개를 꽂아야하는데 애기가 어린데 왔다갔다 하고. 서른한 살 때부턴가 이불집을 했을 꺼여. 우리 아들이 구잡스러워 가지고 잃어버려가지고 혼났네. 명찰을 붙여 놨는디, 도로변에 가서 흙장난 하고 물장난 하고  장사하다가 온 사방을 찾아 다니고 그랬지. 물건 하나 팔기도 힘들었어. 손님 와도 애기가 울고불고 난리가 나면 시누네 가게에 맡겨놓고 물건 팔고 그랬지. 그때 산 일 생각하면 기가 맥히오.”
최정례씨는 아버지 오랜 병 치료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데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린 나이 때부터 남동생 셋을 돌봐야 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이 늦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사촌 시누의 소개로 남편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몇 년을 쫓아다녔지만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 동생들 걱정에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자유결혼 했는데 동생들 돌봐야 하니까 난 결혼 못허요 그랬지. 몇 년 쫓아댕기니까 정이 들드만. 스물여덟에 결혼했는데 그래도 친정집에 가서 청소, 빨래 해주고 두 집 살림 해냈지.  지금은 다 잘 살어. 나만 이렇지. 장사가 꾸준히 잘됐으면 나도 괜찮을텐데. 애들 딱 갈칠 때까지는 되고 인제는 장사가 안 되어 버리네. 그런 게 있드만.”
최정례 씨는 동생들 이어 자식들 키우느라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 내일이면 칠십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거짓말 같이 자식들 직장 얻을 때까지 다 키우고 나니 장사 재미가 뚝 끊겼다. 막내가 졸업한 무렵 그러니까 10여년 전부터 장사가 안 되더니 요즘은 마수(걸이)도 못하는 날이 예사라고 한다.
“옛날에는 사람 많았어. 오죽하면 손님 그만 왔으면 싶드만. 옛날 엄마들 솜이불 하루에 열 몇 채씩 해냈을 때 손님이 사러 오면 품 베리고 못하잖아. 차라리 오늘 그만 오고 내일 왔으면 하는 때도 있었지. 근데 이렇게 놀고 앉았으니...”

한 손님이 신발을 벗고 가게로 들어온다. 경주이불 30년 주객(단골)인 종우엄마(73. 백산면)다.
“인제는 애들도 다 크고 시집 장가 가버리니까 전에는 이불도 사고, 애들 옷도 사고 그랬는디 인제는 암것도 안 사. 그냥 병원에 왔다 들리기만 허지. 주객인디 물건 살 일이 없네”
주객 얘기가 나오자 최정례 씨는 휄체어 타고 온 할머니 얘기를 꺼낸다.
“전에 한번은 요양원에 계신 분이 오셨는데, 자네 보고 싶어서 요양보호사 대동하고 휠체를 타고 여기 왔네. 이불이나 두 개 주소. 이 사람아, 다른 데서 이불 산 게 자네가 준 놈 안 같으고, 이불이 왜 이렇게 물짠 것 같은지 모르것네. 그러드란게”
“그런게 주객이 무서운 것이여” 최정례씨의 말 끝에 종우엄마가 맞장구를 쳐준다.
“일할 수 있을 때가 행복인 것 같어. 댕기다가 안 댕기면 죽고 없어. 왜 그냥반 안 오셔? 그러면 겨울에 죽었어. 작년에 죽었어. 그런당게”
“나도 몇 년 못살것다 혔는데도 이렇게 나이 묵은 것 봐”
“언니 내일이면 내가 칠십이여. 나 놀래버렸네. 뭔 놈의 나이가 이렇게 단박질 한당가?”
“60대 가면 나이도 막 가버려. 2년 포개서 가버려.”
“2년도 더 포개 언니. 60대 넘은 게 5년도 금방 가버려. 왜 근당가?”
오랜 주객이 하나 둘 찾아오지 않는 세월에 대한 푸념인데도 주인과 주객이 주고받는 말씀이 서글프지 않고 그저 재미있다.
보통은 뜨끈한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 보다 자거나 카톡을 한다. 더러 철마다 옷 맞추는 엄마들도 있고, 오늘처럼 간간히 시골 할매들이 담요를 사가는 날도 있다. 종우엄마 같은 주객이 찾아오면 사람들 소식도 주고받고, 자식 얘기를 나누는 재미로 허전함을 달랜다.
끝으로 묻지 않아도 일러주시는 상인 특유의 친절한 말씀을 전한다.
“님의 품안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뜻이에요. 님프만, 유명 메이커에요.”
최정례 씨가 운영하는 경주이불은 님프만 대리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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