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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문화의 밥과꽃35-박영근 시인 시비는 어따가 세울까
  • 정재철(사)부안이야기 이사
  • 승인 2018.02.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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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이 불러 유명한 ‘솔아솔아 푸른솔아’의 가사는 박영근의 시에서 나왔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박영근(1958~2006) 시인은 부안 사람이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위 사진은 2010년 5월 15일에 변산면 마포초등학교에서 열었던 ‘박영근시인 4주기 추모문학제’이다. 필자도 참석해서 박 시인에 대한 얘기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소설가 현기영은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은 타락하고 물질적 가치만 앞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압제의 어둠속에서 빛나는 횃불을 들었던 시인들은 변화한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있지요. 많은 시인들이 세상에 편승하여 영혼이 없는 시, 하루 동안 살기도 어려운 하루살이 시를 쓰고 있을 때, 시인 박영근은 절망했습니다. 아마도 그 절망이 그를 나락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의 순수한 영혼이 살 수 없었던 이 세상에 우리는 궁색하게도 살아남아 있어요.
  박영근은 노동자로 살며 동인지 『말과 힘』을 발간하고 ‘수유리에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첫 시집은 1984년에 발간된 『취업공고판 앞에서』이다. 다섯 번째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창작과 비평사)를 간행했으며 백석문학상도 수상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도 역임했다. 시인은 도시의 노동자들과 함께했으며 시에는 눈물과 깊은 서정성이 배어 있었다.
  그는 신자유주의와 물질만능에 빠져버린 세상에 절망했다. 노동의 가치가 오직 물질로만 계산되는 세상 앞에서 희망을 잃었다. 시인은 술이 취하면 울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해체되어가는 고향 마포를 찾아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폐결핵으로 몸이 기우러졌지만 감추고 병원을 찾지 않았다. 병이 위중하여 억지로 병원으로 떼 메어 왔지만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런 그의 행동을 ‘소극적 자살’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 사람들은 인천시 부평구에 박영근시비를 세웠고 시인의 ‘추모제’와 ‘박영근 작품상 시상식’도 열고 있다. 부평구는 박 시인이 1985년부터 2005년 까지 살던 곳이다. 그가 변산면 마포리에서 출생해서 마포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정작 고향 부안에서는 그에 대한 관심이 없다.
  박영근의 시비를 고향에 세우는 사업은 기념사업회와 부안의 민간단체 간에 현재 논의 중이다. 중요한 것은 고향 사람들이 그의 시비 세우는 것을 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디에 세울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그가 살던 집 앞에 세울 수도 있고, 마포초등학교, 동네 당산나무 밑 등 여러 곳을 생각하지만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면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시비 세우는 일을 통해서, 샛바람에 떨지 말라고 위로하고 창살 아래 묶인 동지를 생각하던 따뜻한 그의 시를 떠올리면 좋겠다. 군사 독재시대의 엄혹함을 ‘노동의 힘’으로 헤쳐나간 그의 삶을 기억하는 시간이 얼른 오기를 기다린다.

정재철(사)부안이야기 이사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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