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보건소는 1951년 10월 1일부터 도 직할로 운영 중이었다. 5.16군사 쿠테타로 1962 년부터는 무송병원에서 보건 업무를 시작했다. 그 후 1963년 3월에 21만 8천원의 공사비로 부안읍 동중리에 보건소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그해 6월 30일에 건물이 완공되어 보건 업무가 신청사에서 시작되었다.
부안군에 보건소를 열면서 모자보건사업, 가족계획사업, 결핵관리 사업 등 보건사업의 많은 진전이 있었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면단위에도 보건요원과 의사를 배치하여 교통이 불편한 지역 사람들도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었다.
플래카드에 나와 있듯이 부안군보건소는 1964년 5월을 ‘가족계획의 달’로 정하여 추진하였다. 나이든 사람들의 보건소에 대한 기억은 ‘가족계획 사업’이다. 정부는 인구 감소를 위해 가족계획 요원을 배치하여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계몽과 설득을 했다. 표어들을 공모하고 인쇄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는 가리지 않고 붙였다. 60년대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벗는다’는 위협적인 표어로 시작하여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더니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나중엔 ‘한집 건너 하나’라는 구호까지 나섰다. 아들 선호에 대한 대처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가 대신했다. 인구교육 강사들은 적게 낳아야한다는 얘기를 청중들의 귀가 아프도록 하고 다녔다.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이 하는 예비군 훈련에도 이들이 와서 교육한 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손을 들면 수술을 전제로 예비군 훈련을 감해 주기도 했다.
실적을 올리려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들도 생겼는데, 최근에 선배에게 들은 얘기다. 가족계획 요원에 설득당한 아주머니가 병원에 도착하여, “넘들이 그러는디요, 우리 집은 어저씨가  했은게 나는 안 해도 된다는디요.” 그러자 옆을 지키던 관계자가 “그런 얘기 흘 필요 없고 이~” 그 뒤 이 아주머니가 수술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2000년대는 달라졌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심지어 ‘결혼 1년 안에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5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는 123운동까지 펼쳤다. 적게 낳아야한다는 인구교육이 어느새 많이 낳아야한다는 표어로 손바닥 뒤집듯 바뀐 것이다. 인구 감소로 그 많던 초등학교들이 폐교가 되고 면단위에서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다는 요즘이다. 정책이란 과학적인 예측과 결과까지도 전망해야하는데 그저 정부에서 정하여 마구 밀어붙여서 실적을 내다보니 인구부족이라는 현실이 다가온 것이다.
위 사진의 플래카드의 또 하나는 ‘반공사상 계몽 및 간첩자수 기간’이라는 글이다. 내용으로 보면 이곳이 군부대의 방첩대나 파출소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이곳은 부안군보건소 건물이고 때는 1964년이다.
군부독재 시대에 우리는 표어와 동원에 길들여 있었다. 돌아보면 한 예로, 밤 12시만 되면 통행금지라는 통제에 숨죽이며 살았다. 이런 독재와 통제의 뿌리에는 ‘남북 분단’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강대국이 갈라놓은 민족 분단의 이 참담한 역사를 끊고 통일의 길로 한달음에 달려 나가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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