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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지부장의 궁색한 변명

김종규 군수가 각 읍면을 돌며 오복공감 이야기마당을 열고 있다. 참석자는 대부분 이장단과 부녀회, 조합원, 일부 기관 관계자나 정치인들이다. 공무원들도 각 실과소 과장, 팀장 및 실무 담당자들로 어림잡아 40여명은 되어 보인다. 지금까지 각 읍면에서 열린 오복공감 이야기마당이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22일에는 변산면에서 열렸다. 이날 오복공감에는 중학생 20여명도 참석했다. 참석한 이유를 물어보니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왔다고 꾸밈없이 대답했다. 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했던지 학생들 일부는 졸고 일부는 스마트폰에 집중하거나 자기들의 대화에 열중했다. 학생들은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가 ‘시간 때우기’에 곤욕을 치렀다.
한 시간 반 쯤 흘렀을 때 참석했던 어른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 때 한 학생이 졸고 있는 친구들을 깨웠다. 잠시 후 사회자가 질문지 카드 하나를 집어들고 “피로엔 박카스. 누가 이런 질문을 썼을까요?”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일제히 손을 들고 “저희요.”라고 외쳤다. 오복공감 이야기를 진행하느라 피곤하실 군수님을 위해 준비했다는 것이다.
반강제로 인력을 동원하거나, 질문자나 질문내용을 정해놓는 모습에 박근혜 정권 시절 티비에서도 보았던 장면이 떠올라 거북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 시켰다는 것이 같은 어른으로서 창피하고 화가 났다. 수차례 연습했다고 지친 목소리로 말하는 학생들에게 차마 더 자세히 묻지 못했다.
변산면사무소 관계자에게 중학생들을 동원해 수차례 연습까지 한 사실에 대해 확인했다. 또한, 학생들이 군정 홍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학생들이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에 공문을 보내 모집했다는 설명이다. 처음부터 행사에 참여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변명이다.
더구나 학생들에게 자비로 점심을 사주면서 “박카스라는 질문이 있는데 그거라도 해줄래?”했더니 학생들이 하겠다고 자율적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도 해도 문제다. 도움과 나눔의 가치를 체험해야 할 학생들의 소중한 봉사 시간을 버젓이 훼손하고도 궁색한 변명뿐이다. 윗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행정에서 벌어진 일일 테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행사를 총괄하고 학생들을 참여시킨 담당자가 새로 출범한 공무원노조의 신임 지부장이라니, 한숨이 길어진다.
지난해 공무원노조 양정우 지부장은 ‘식물노조는 이제 그만, 강하고 일하는 민주노조’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당선했다. 본지와의 당선 인터뷰에서 과거 노조처럼 집행부인 부안군청에 끌려가지 않고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부안군청의 옳지 못한 명령이나 제도 개선에 맞서야 할 지부장이 불필요하게 과장·팀장들을 동원해 행정인력을 낭비하는 행태에 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앞장서 학생들까지 동원해 윗사람의 비위 맞추기에 일조했다고 하니, 출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공무원 노조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이일형 기자  ulis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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