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의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최근작 <언노운 걸>로 낯익어졌지 싶습니다. <로나의 침묵>은 2008년작으로 깐느에서 꽤나 호평 받은 걸작에 대중들에게도 사랑을 받은 작품이지요. 거기다 자주 접하지 않은 배우와 익숙지 않은 감독의 작가적 미학을 보고 있노라면 나 스스로 느낀 것 이상으로 과대포장 해야 할 것 같아 겁부터 납니다만, 아무튼 그다지 길지 않은 러닝타임으로 이제서야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사랑일까요? 사랑인가요? 로나의 감정은 뭡니까?
알바니아 여성 로나는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려고 약물중독자인 클로디와 위장결혼을 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와 곧 이혼해 다시 러시아인과 결혼을 할 계획이죠. 그녀가 얻은 벨기에 국적을 얻기 위해 뒷돈을 주려는 러시아 남성이 있기 때문이고 로나는 실제 애인과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그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클로디와 결혼해 벨기에 국적을 얻은 로나는 어서 그와 이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고많은 사람들 중 약물중독자일까요? 위장결혼 브로커인 파블로는 역시 전문가답게(?) 이혼구실을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클로디의 죽음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혼이 까다로운 그곳에선 오히려 미망인 되기가 더 쉽고 빠르다는 계산에서입니다.
주먹 불끈 쥘 정도로 로나는 너무 냉정했어요. 보기 싫게 마른 클로디는 이틀째 약을 끊은 상태라 매우 힘들어하고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죠. 어차피 헤어질 사람들이라 일상적인 대화나 감정들까지 다 불필요한 소모라 생각했는지 로나는 다 죽어갈 것 같은 클로디를 모른척하다시피 합니다. 몇번의 고함과 애원을 해야만 들어줄 뿐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껄끄럽다 여기던 시간들이 연민으로 변모했나 봅니다. 로나는 클로디의 죽음을 막으려 다른 이혼수단을 강구합니다. 가정폭력이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 클로디가 폭행을 했다고 거짓신고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법원에서 강제적으로 이혼을 하게끔 할테고 클로디는 약물중독으로 죽을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이혼결정 통지를 받게 된 로나와 그것을 알게 된 클로디, 그 날밤 둘은 사랑을 나눕니다. 상실감 때문에서인지 간신히 절제했던 약을 갈구하는 클로디와 연민을 갖게 된 로나가 나누었던 그날 밤 사랑은, 정말 사랑인가요?

50분에 가까운 내용이 저렇고 그 뒤부터는 제가 예상한 것과 아주 다르게 나갑니다. 암시와 '설마'가 사실이 돼버리는데 그런 진행에 저는 다소 당황스럽더군요. 너무나 갑작스러워 말이죠. 엔딩은 로나의 상상임신으로 마무리됩니다. 뱃속의 아기를 지키려 파블로 일당에게 탈출해 어딘지 모를 산속 작은 오두막집에서 눈을 붙이는데서 끝이 나요.
그녀가 침묵하는 동안, 그래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동안 그녀의 내부에선 사랑과 연민 사이를 줄타기하고 양심과 고통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다쳤나봅니다.

로나의 그런 침묵처럼 영화 또한 절제의 미학을 발휘해 음악도 없애고 감정의 표현이 될 만한 대사나 표정이나 행동도 없애 메마른 영상미를 무덤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인칭 시점에 전후맥락을 자르고 본론부터 꺼내드는 전개에 저 둘의 관계나 상황을 퍼뜩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요. 이처럼 보는 내내 친절하진 않지만 보고난 후 다양한 면에서 너무도 풍부한 감정과 여운을 갖게 하는 영화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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