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는 종달새와 진달래가 없다고 그러데. 일본놈들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잖어. 독도에 가까운 울릉도를 갈 때 종달새와 진달래를 갖고 가서 국민학교에 진달래를 심은 적이 있었네

는 김철수 선생의 얘기인데, 선생의 시에는 종달새를 노래한 운작(雲雀) 시가 있다. 평교다리 근방의 들판에서 하늘을 나는 종달새를 보고 지은 시로, 성외성(聲外聲)이라 하여 ‘소리 밖에서 소리를 듣는다’고 표현했다. 종달새는 한국 전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이자 겨울새이고 중부 이남에서는 겨울철 이동 시기에는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3~4월에 지저귀기 시작했다. 강가 풀밭이나 보리밭·밀밭 등지에 흙을 오목하게 파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농약 등의 피해로 수가 줄어들어 근래에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선생은 살고 있는 작은 방 벽에 종달새 사진을 붙여 놓았다. 한국 땅에 종달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이다. 집 앞 화단에는 오죽과 청죽을 심고 청매화, 차나무도 심었다.
한 평생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선생은 자신을 위해 남긴 것이 없다. 평소에도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여 작은 것이라도 있으면 남을 도왔다. 부안에서 그가 살던 곳은 세 곳이었다. 백산면 원천리가 고향인데 그의 집터에는 다른 사람의 양옥집이 들어섰다. 60년대 중반에 선산에 지었던 집은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되고 있는데, 독립기념관의 홈피에서 전라북도 독립운동 사적지를 검색해보면 이곳을 소개한다. 계화면 돈지에 있는 삼성약방 건물은 딸 용화씨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아버지를 모셨던 집이고 선생이 기거했던 작은 골방이 있다. 하지만, 이 집도 용화씨가 연노해서 전주의 조카가 모셔가면서 빈집이 되었다. 유명을 달리한 후는 조상의 선산조차 팔려 나가고 본인은 정부가 내준 국립묘지에 고단한 몸을 뉘었다.
  대한제국 말에, 이평면 말목에는 구례 군수를 지내다 군수 직을 사직한 서택환이 서당을 열고 있었다. 서택환은 “우리나라가 다 망해간다. 너희들이 일어나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김철수 선생은 그를 통해서 한국의 선비 정신을 배우고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뒤 사상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 예심판사가 누구를 사숙했냐고 묻자, 자신은 유학자인 서택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택환 선생의 영향으로 사람 노릇을 한다고 자주 얘기했다.
  김철수 선생은 본인이 자금을 마련하여 서택환 선생의 묘 앞에 비 하나를 세웠다. 그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아끼던 젊은이가 찾아오자 선생은 아래처럼 얘기했다
    
 아무나 비 세우는 거 아니네. 우리 아버지 묘에 비 없는 것은 내가 상관 안 혀. 아 그저 상석하나 그 양반 앞에 놓았으면 그만이지마는, -중 략- 서택환 그 양반 앞에는 비를 하나 세워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후인들이 본받고 해서 세상일이 잘 될 것 아니여 존경도 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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