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위도를 찾았다. 사진작가 허철희선생과 문화 해설사 박옥희선생과 함께였다. 위도에 있는 문화재를 살피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답사였는데 위도를 향하는 객선 위에서 맞는 춘삼월의 바닷바람은 쌀쌀했다. 먼저 진리 당숲을 어렵게 올랐다. 길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큰 풀로 덮인 작은 길을 어렵게 헤치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숲이 주는 평안함이 반갑게 다가왔고 허철희 선생으로부터  위도의 나무들에 대해서 얘기를 들으면서 궁금증을 풀었다.
곧 이어 깊은금으로 갔다. 산에 있는 돌방무덤을 찾기 위해서다. 깊은금에 사는 주민은 “산에 독(돌)무덤이 많았는데 포크레인으로 정리함서 많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사유지다 보니 이곳에 있는 돌방무덤을 없애고 조상들의 무덤을 조성한 모양이다. 이 곳에 60여기의 돌방무덤이 산재한다는 신문 기사를 참고하여 무작정 산 속으로 들어갔다. 산을 오르며 돌방무덤을 찾고자했으나 쉽지 않았다. 일반 묘 주변에는 돌방무덤에서 나옴직한 돌들이 놓여 있는 것도 보았다. 무덤 하나쯤은 발견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산을 오르내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온 몸에 땀이 흐르고 찾기를 거의 포기 할 즈음에 비탈진 땅에서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나무와 흙을 파헤치니 위 사진에 소개한 정교한 돌방무덤이 나타났다.
무덤이 있는 깊은금은 위도에서는 물이 풍부하여 벼농사가 가능한 곳이다. 치도리 포구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 마을에 일찍이 둥지를 틀고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한자로 심구미리(沈九味里), 짚은금 혹은 지픈금이라 불렀다.
돌방무덤이 위도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무덤 양식을 사용했거나 경험한 세력이 정치적 상황을 피해 이곳에 들어왔거나 주변 배들이 드나들면서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무덤 양식이 전해졌을 수도 있다. 산 위에서 채석을 하고 큼지막한 돌을 옮겨와서 이렇게 정교하게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여기에 묻힌 사람들이 주민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부안 주변지역의 돌방무덤을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정읍시 영원면 탑립 주변과 부안군 주산면 배맷산, 그리고 이곳 위도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무덤 양식은 금강 하류지역에서 5세기 후반부터 나타난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곳에 묻힌 피장자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지만 현재로는 남아 있는 유물이 없다.
위도의 도장금이라는 동네 주변에도 돌방무덤이 있다는 증언을 듣는다. 지표조사를 통해 위도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무덤이 계속하여 파괴되기 전에 전수 조사라도 할 수 있다면 위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규명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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