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어머니를 보기위해 전주에 내려왔을 때 지방TV 뉴스를 통해 보도된 부안여고의 사태를 처음 접하며 놀라움과 부끄러움으로 망연자실했다. 며칠 후에 차를 몰고 무작정 부안을 향했다. 휴일이라서 텅 빈 학교의 교정에는 짙은 녹음과 풍성한 조경이 평화로움을 더할 뿐이었다. 졸업한 지 38년 만에 방문한 학교는 엄청 변화되어 있었다. 새로운 외관과 증축된 학교 건물들, 기숙사와 학교식당은 이러한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노고와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쉽게 짐작하게 해 주었다. 다시 바쁜 일상에 묻혀 있을 때 후배로부터 학교가 처한 어려움을 전해 들었다. 상황을 파악해 가면서 서운함에서 답답함으로, 마침내는 모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감정이 변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에게 부안여고는 정체성을 시험하는 바로미터였다. 서울의 강남구와 용산구에 소재한 공립 고등학교에서 이십년 가까이 영어를 가르칠 때 나의 고향이 전북지역임을 알면 동료교사들은 “00여고 졸업하셨죠?”라고 질문하곤 했다. 이는 국가연구기관에서 일회성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같은 팀에 소속된 연구원들로부터 반드시 받았던 질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던 시절에 나도 그들처럼 당시 최고의 지역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니요, 부안여고 졸업했습니다.”라고 망설이지 않고 당당히 대답했다.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대학입학 후에 꾸준히 받아온 질문이었으며, 촌놈이라고 무시를 받을까 두려워 이를 속이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차 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주축을 이루던 1970년대까지 부안은 우리나라 최대곡창지인 호남평야의 핵심지역이었다. 풍요로운 농산물과 더불어 변산반도의 풍부한 수산자원 덕택에 많은 부를 축적했던 곳이다. 이러한 지역에 위치한 부안여고에서는 평범하지만 다양한 농어촌 가정의 딸들, 호남평야 대지주의 딸들, 변산반도 선박주의 딸들이 자신의 가정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럼 없이 어울렸으며 성적이나 취미가 다른 학우들끼리도 돈독한 우정을 다졌다. 우리에게 학교는 아름다운 학창시절을 공유하게 만든 소통의 장이었다. 서울시민이 된 지 오래이건만 성장기를 부안에서 함께 보낸 우리는 만나면 서로를 ‘부안사람’이라고 부른다.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문화수준과 축적된 부를 지니고 있던 부안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지닌 채.
부안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자라고 지금까지도 부안을 지키고 있는 ‘진정한 부안사람’에게 ‘부안사람’이 외람되지만 부탁하나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모교이자 부안의 딸들의 모교인 ‘부안여고’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학교로 거듭나도록 관심을 가지자고요. 잘못했을 때는 질책을 아까지 마시고 어려운 때는 힘이 되어 주자고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일부는 비아냥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후배라고 부르기에는 아득히 어린 후배들이 훗날 내 나이가 되어서 모교를 찾을 때 모교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생각해보니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군요.
아울러 내가 장황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번 사태로 충분히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할 모교의 교사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달라진 사회분위기 및 학생, 학부모의 요구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는 학교의 역할이 소중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수업과 업무 등으로 힘들겠지만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모두 진심을 이해할 거라 믿습니다.
지구본을 돌리다보면 극동아시아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 한반도는 땅덩어리마저 작아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오천년의 역사만큼이나 다사다난했다. 중국의 패권주의에 휘말려 중국의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었고, 약삭빠른 일본인들의 대략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전락할 수도 있었지만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OECD 10위권의 경제를 이룩하고 강소국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나는 학교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로 우리를 흥분시키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로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과오를 반성과 자숙의 계기로 삼고 성숙해가면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로 남는다. 60여년이상을 부안지역사회에서 자라온 부안여고 또한 이런 모습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남산자락에 곱게 물든 단풍이 가을 햇살을 받아 아름답습니다. 청정지역인 부안의 단풍은 이보다 더 곱겠지요? 해안선을 따라 변산반도를 한 바퀴 돌아서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가을소풍지였던 내소사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가는 길에 어느 이름 없는 가게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냄새에 이끌려 전어구이라도 한 접시 먹으면서 고운 단풍과 더불어 가을의 정점을 찍고 싶네요. 싱싱한 회 한 접시이든 숯불에 익힌 전어구이이든 가을 전어 맛은 일품이었지요. 일제 강점기에 이 맛을 본 일본인들이 “조선 놈들이 먹기에는 아깝다.”라고 말했다더군요. 이 가을에 부안여자고등학교는 감칠 맛 나는 가을전어가 아니었는지 씁쓸한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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