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노래하는 사람

생강을 캐러 갔습니다. 부여 남면에서 농사짓는 친구 부모님 댁 생강이 된서리를 맞아서 노래진 걸 뽑아내는데, 작년처럼 손으로 생강 줄기를 잡아채 수확하지 못하니 시간도, 몸 씀도 작년보다 더 애를 써야합니다. 그만큼 밥이 달고 급하니 입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밥을 뱃속에 집어넣기 바빴습니다.
몇 술 뜨고 나니 그제야 눈앞이 환해지고 들고 있던 숟가락에 써진 글씨가 보입니다. ‘영광핵발전소’라고 읽히는 글씨가 보이더군요. 저번 주에 영광탈핵 집회에 참여한 저로써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죠. “누가 여기에서 일 하시나 봐요?”라고 물으니 “우리 사촌이 거기에서 일해요. 지금은 아랍에미레이트인가 거기에서 일하고 있고. 아, 내일 아침에는 그 사람이 보내 준 커피를 마시면 되겠네”라고 답을 하는 친구 어머니 얼굴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광에서 탈핵 집회를 할 때 떠올랐던 밀양 고정면에 살고 있을 순출 할머니 생각도 나고요. ‘우리 순출 할머니는, 영자 농부는 어떤 마음일까 지금······’하고 말예요.

제가 던져진 이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과 함께,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 동물들 삶이 교차되면서 애달픈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팔당댐을 막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결국 나라에서 하는 일을 누가 막겠어?’ 라던가 ‘난 이제 죽을 몸이니, 젊은 사람들 손에 맡겨야지 무슨 말을 더하겠어.’라고 말씀하시던 어르신, 나이든 사람 동물들 말이 되새김 되었습니다.

7세대 이후를 생각한다는 일본의 세븐 제너레이션워크(7GENERATION WALK)랄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네스트젠(NEXTGEN) 젊은 농부꾼들과 활동가들 모습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런 새싹이들이 정녕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지금 이 몸-‘나’라는 말보다-이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일까를 돌이켜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종말론적인 국면과 함께 여즉 풀리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 예를 들어 밀양 할매가 마음 아파한 마음 사람들과의 관계랄지, 제주 강정 마을에 아직도 휘날리고 있을 태극기와 ‘미군기지 반대’ 깃발 같은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 며칠 만을 살게 된다고 했을 때, 남겨야 하는 ‘씨앗’,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 역사는 어떤 이야기일까, 혹은 어떤 이야기여야 할까.

영광에서 탈핵을 이야기한다는 건, 마치 지나간 파도가 다시 돌아오거나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후에 살아갈 생명들과, 사람 동물에게 다른 세상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겠지요.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과 이전과 다른 결과, 아니 다른 씨앗들을 심는 또 다른 새해가 될 수도 있겠고요.

“나는 어쨌든 최선을 다했어. 9번이나 생강 풀도 매고. 그러면 되었지”라고 말하는 여성농부 말을 따라 해봤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하고요. 그리고 다가올 혹독한 겨울, 이전 역사 경험 없이 그저 맨 몸으로 부딪혀 살아낸 후손,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생각하는 것이 절박한 세계 속에서 말입니다.

생강을 캐고, 일일이 손을 써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하니, 작년에 뜨다가 만 장갑이며, 양말들이 아쉬워졌습니다. ‘이걸 이이서 새로 짤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엉켜 있고 뒤죽박죽인 실타래들을 풀 수 있을까요? 가위로 싹둑 자르려는 손을 잠시 멈추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어가려는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도 이렇게 가위로 싹둑 잘라낼 수 있는 것일까?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살피고 풀어내서 이어갈 수 있다면, 버려지고 잘리는 것 없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며 가위를 내려두고 잘린 실타래를 설설 풀어내 봅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하는 ‘탈핵’이란 화두도 이런 것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우리 삶 지났던 이야기들 중 풀리지 못하고 이어가야 하는 실마리가 무엇인가를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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