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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민중사 ③-혁명아 허균과 매창 ; 신분의 차이를 초월한 조선 최고의 플라토닉 러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서의 주인공 길동이가 서자임으로 허균도 서자로 흔히 착각하는 편도 많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허균은 원래 그가 살던 조선 중기에서 가장 화려한 문벌가문에서 태어났다.
허균은 당대의 명문가문 양천 허씨 문중에서 일찍이 서경덕의 문인으로서 경상도관찰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초당 허엽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이복형제이나 장형인 허성은 이조판서와 병조판서와 전라도 감찰사를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 허엽은 첫 번 부인과 사별하여 다시 정식으로 강릉 김씨 명문가의 예조참판을 지낸 김광철의 딸을 부인을 얻어 얻은 허봉, 허난설헌-초희와 허균을 두었다. 당시에 부친 허엽은 동인 무리 중의 영수였고 장남 허성과 이남이자 출중했던 허봉 또한 과거에 급제를 하여 벼슬을 하며 허초희-난설헌과 허균의 천재적인 문장과 시재와 더불어 학문과 지성으로 조선 땅에서 가히 그 이름을 떨치던 가문이었다. 세인들은 허엽의 두 사위들까지 포함하여 허씨 가문의 오대문장가들을 상찬하곤 다. 허균이 유난히도 좋아하고 따랐던 이가 일찍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그의 강직한 성품으로 종성으로 유배를 당하고 금강산에서 38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요절한 둘째 형, 허봉과 역시 짧은 생애로 마감한 천재적 여류 시인 허초희-난설헌 누이였다.

부사 김청이 늘그막에 자연을 벗 삼아 쉴 곳으로 마련해 둔다는 목적으로 지은 암자가 우반동의 정사암이었다. 그 정사암을 인수받은 허균은 오래 전부터 변산반도의 산과 바다, 특히 우반동의 풍광을 흠모하고 아꼈다. 그리고 이곳을 배경으로 삼아 정사암에서 허균은 많은 글을 쓰고 소설 홍길동을 구상하고 저술하였다.그 가장 중요한 줄거리와 모티브는 서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지상에서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이 중요한 줄거리였다.
서자출신의 홍길동이 차별의 집을 나와서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로운 도적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의 내용이었다.
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비를 아비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서자의 자식은 자식취급을 하지않는 조선봉건사회의 서얼의 차별과 신분적인 제약과 모순을 허균은 소설을 통하여 과감히 혁파하고저 했다. 사실상 조선에서 서자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사실상 없다고 하면서 무륜(無倫)이라고 하였다.
참혹한 임진왜란은 무능한 왕의 존재와 함께 지배 통치계급인 양반과 사대부들이 바로 그들의 이익다툼과 분렬 때문에 사람이 넷이면 당이 네 개가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당파싸움과 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허균은 생각했다.
당시 허균의 시대는 끔찍했던 7년의 임진왜란을 치루고 난 후에 피폐하고 굶주린 백성들의 참상이 말이 아니었다. 허균의 가족 또한 이 전쟁을 통하여 피난길에서 혹독한 고난을 겪으며 결국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야 만 것이었다. 백성의 배고픔과 주림을 해결하여 주는 것이 나라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긴급한 일인데 당시에는 기아에 허덕이던 유랑민이 많아서 사당패도 문제가 되던 상황이었다. 어디를 가도 먹을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니 유민들이 한 끼 밥을 얻기 위해 부호의 집을 털거나 능묘의 제기를 훔치고 관아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런 유민들을 끌어모은 것이 사당패였고 관가에서도 그 세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통제도 제대로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참담한 상황에서 각종 전란 후의 한양과 지방에서의 복구작업의 노역과 조세를 물지 않으려고 백성들이 살던 정든 고장을 떠나 유리걸식하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소극적 복지차원의 구빈이 아니라 민중들의 신분적인 차별과 적극적인 빈곤으로 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 활빈당이 홍길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깃발이었다. 서얼로 천하게 살은 스승 이달과 벗들만이 아니라 세상의 불우한 이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모순에 대한 분노는 허균의 천품이며 성정이었다.

촉음(燭陰)은 산해경에 나오는 천지를 개벽한 신이다. 정여립에 이어서 허균은 조선왕조의 지배계급의 이념적 기반이 된 주자학과 철저한 신분제 사회의 변화를 꿈꾸었다. 비록 그의 400년 전의 그의 시대적인 한계는 분명하였을지라도 허균은 그의 당대에서 최선을 다해서 그의 시대의 한계와 모순체제를 뛰어넘는 이상사회를 홍길동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또한 그의 유재론과 혁명적인 호민론을 통해서 설파하였다. 허균은 한국의 세에스였을지도 모른다. 세예스는 불란서 혁명에서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로 불을 지른 인물이었다.
허균은 매창과, 또한 친한 벗이었던 화가인 이정들과 더불어 변산에 이어서 위도를 방문한 후에 이 섬을 배경으로 한 이상국가를 그렸다. 그리고 원래는 고슴도치라는 섬의 이름인 위도보다는 이 섬에 밤나무가 많으니 율도국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율도국은 만민평등의 유토피아였다.

매창은 부안의 아전과 종의 딸인 노비로 태어나 빼어난 시와 거문고의 계생이라는 기명으로, 훗날 조선 전체를 통하여 황진이와 더불어 천재적인 여류시인과 기생 매창으로 그 이름을 떨친다. 일찍이 매창은 역시 천노 출신의 신분이었지만 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유희경을 만나 정인의 관계가 된다. 유희경은 훗날, 임진왜란 시기에 세운 공으로 통정대부가 되어 양반으로서 출세의 삶을 살다가 90세가 넘도록 장수하였다. 매창이 젊은 나이로 죽자 유희경은 매창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한수를 보내온다. 반면에 허균은 역시 매창의 죽음을 기리는 절절한 시 한편도 모자라서 두 편을 보내온다.
무엇보다도 허균은 육체관계 아닌 매창의 고결한 품성과 재능을 아꼈다.

매창은 일찍이 해운판관으로 부임한 허균을 부안에서 상면한다. 그의 직책상 부안의 평야와 바다를 둘러보고 특히 해창을 방문하려던 목적이 있었지만 허균은 일찍이 시로 전 조선에 이름 높은 매창을 반갑게 만났다. 매창 또한 문재와 시로 전 조선에서 이름을 떨치던 대문호 허균을 모를 리가 없었다.
허균만이 아니라 일찍이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초희의 시도 이미 잘 알고 사모하던 매창이었다. 매창을 만났을 때 이미 허균은 그가 각별히 사랑하던 누이 난설헌을 10년 전에 잃은 아픔이 있던 차였다.
허균이 만난 부안에서의 천재적 시인 매창은 어찌보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불우한 누이이자 천재 여류시인이었던 난설헌 초희의 또 다른 현신이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양천 허씨 문중, 명문거족의 부러울 것이 없는 고명딸로 촉망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허초희 -난설헌과는 달리 매창은 조선의 엄격한 신분질서 속에서 평생을 천한 관노비로 살아야만 하는 불우한 여류천재였다. 허균은 매창의 품성과 재능을 사랑하고 또한 그녀의 불우한 신분적인 태생과 아픔까지도 깊은 연민으로 아끼고 사랑하였던 것 같다. 조선이라는 숨막히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의 양반과 천한 관노비의 차이를 뛰어넘은 숭고한 플라토닉 러브가 허균과 매창이 38세로 죽기까지의 십년 세월 동안에 부안 우반동과 변산-봉래산과 한양의 멀고 먼 거리를 뛰어 넘어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허균의 정사암을 매창이 방문하고 허균은 매창에게 참선과 불교와 도교적인 평화를 권유하며 더불어 함께 하기도 했다.

신부, 시인, 종교사회학 박사.
전북 출생. 중앙대 정경대 졸, 한국신학대 수학. 서강대 대학원 졸. 독일 보쿰(Bocum)대 신학박사과정 수료(종교철학, 기독교사회이념 전공). 성공회대 사회학박사(사회사상 및 종교사회학 전공)
 

최자웅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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