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투쟁의 의사수단에서 ‘반핵공동체’의 자부심으로

“노란 옷을 입고 나가면 자부심도 들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한 감정도 들어. 저기 깃발 꽂힌 상점은 이제 모두 친척처럼 되어버렸지.”
상설시장의 박아무개(65, 상인)씨는 ‘핵폐기장 투쟁’으로 변한 것들에 대해서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부안항쟁이 있기 전에는 같이 자영업을 해도 몇 집 건너에 있는 상점들은 안면만 있을 뿐, 말 한 마디 꺼내기 어려운 사이였다는 것이다. 당시 부안 읍내는 저녁 9시만 되어도 인적이 끊어져 적막감이 감돌아 여느 농촌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김종규 군수가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직후부터, 부안의 풍경들은 빠른 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역동적인 부안 풍경
집회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동일한 티셔츠와 조끼, 점퍼 등을 착용했다. 사람들은 집집마다 상점마다 들녘 곳곳에 반핵 깃발을 세웠다. 회색의 담장과 벽에 활기찬 그림을 그렸고, 극렬한 싸움 과정에서 어부들은 ‘젓갈탄’을 고안해냈다. 할머니들은 삶의 향기가 베어나는 ‘반핵보따리’를 만들었고, 어린이들은 노란 종이배를 강물에 띄웠다.
뿐만 아니라 수협 앞 네거리가 ‘반핵광장’으로 이름이 붙여졌고, 군청 앞 넓은 공터는 ‘반핵동산’로 명명되었다. 술자리의 건배 구호도 바뀌고, 상 치르는 풍습까지도 변하는 등 ‘반핵투쟁’은 부안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면서, 이제 부안은 더 이상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농촌이 아니게 변모했다.
부안의 상징 ‘노랑’
부안을 상징하는 가장 명징한 것 중 하나는 부안만의 색깔이다. 사람들이 입는 티, 모자, 점퍼 같은 개개인의 노란 복장과, 노란 깃발, 노란 벽화, 노란 플래카드, 노란 전등, 노란 종이배 등 노랑은 부안에서 매우 각별한 색이 되었다.
색상 전문가 최아무개(큐레이터)씨에 의하면, “노란색은 명도가 높아 여러 색상 가운데 가장 밝고 빛나는 색”이라며 노랑을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에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노란색이 인간생활에 밀접하게 끼어들어 인류사에 가장 깊이 각인된 것으로 태양 이외에 한 가지는 황금이었다. 그는 또 노란색의 성향에 대해서 “대체로 모두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소통의 의지
부안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을 이루는 깃발들과 플래카드, 그리고 담장에 그려져 있는 벽화 등 부안투쟁의 많은 상징물들에 대해서, 허철희(사진작가)씨는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절박한 심정에서 외부와 소통을 하고자 하는 원초적인 몸부림”으로 정의했다.
그는 핵 폐기장 싸움 과정에서 대부분 언론들은 부안 주민들을 ‘폭도’의 이미지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부안 싸움의 많은 흔적들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사 표현 수단”이라는 것이다. 개개인의 의사 표현의 하나라는 점에서 ‘주민자치’의 상징이라고 덧붙였다.
그 결과 부안투쟁의 상징물들은 ‘원초적인 예술품’이라 “강하고 생동감이 있으며 힘이 넘친다”고 말하며 방문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품앗이 예술
부안의 싸움 과정에서 생겨난 상징물들의 또 다른 특성은 ‘자발성’에 있다고 한다.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하여 호평을 받은 작품 ‘부안사람들’의 큐레이터인 유미옥(화가)씨는 부안에 보여지는 많은 상징물에 대하여, “주민들의 분노 상태가 한 단계 승화되어 형상화된 창조물”이라고 말했다.
반핵 싸움은 생존문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고안되고 품앗이 형태로 제작되는 것은 전형적인 민중 예술의 한 특성이라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의 민초들에 의해 그려진 민화들과 유사함을 적시하면서, 그래서 더욱 “소박함과 충분한 겸손이 배어있으며, ‘보편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반핵공동체의 자부심
반핵투쟁이 잉태한 상징물에 의해 주민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촛불 집회 때 노란 옷만 입으면 유순해지고 착해지는 것 같아. 참 희안한 것이 평소 자주 버리는 담배꽁초도 노란 잠바만 입으면 길바닥에 안 버린다”고 김아무개(53,상인)씨는 고백했다. 상설시장 부근에서 국밥을 파는 최아무개(47)씨는 “노란 잠바를 입고 오는 손님에게는 무심결에 순대를 더 많이 집어넣어 준다.”며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노란색으로 표현되는 투쟁의 상징물들이 비단 반핵 주민들에게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국추련 한 관계자는 집회 때마다 “노란 잠바를 입은 사람은 벗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당부를 외친다며, 그것이 ‘반핵’ 집단의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1년 넘게 지속되어온 반핵 싸움의 의사수단으로써 자생적으로 생겨난 많은 것들이 지금은 주민들의 자부심과 ‘반핵공동체’의 결속력으로 나타나며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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