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마실길을 걷는다. 새만금 전시관에서 시작된 해안 길은 격포를 거쳐 줄포까지 이어진다. 작당에서 곰소까지 걸을 때는 겨울이 좋다. 찬바람에 몸을 맡긴 채 관선불에서 생굴을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 굴은 특이하게 갯벌에 꽂혀 있는 자연굴이다. 내소사 앞쪽을 지나면 언제 나타났는지 흰 진돗개 한 마리가 길을 안내한다. 신사와 호박이라는 음식점에서 키우는 개다. 이 개는 걷는 사람들을 앞서 안내하다가 곰소의 신작로를 만나면 사람들을 뒤로하고 오던 길을 되짚어간다. 너무 신통방통하다며 함께한 사람들이 감탄하는데,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길래 주인에게 물어보니 누군가 몰래 데려갔다고 서운하다며 개가 걷던 먼 길을 슬프게 쳐다봤다.
  변산마실길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등의 마실길의 역사는 중요한데도 알 길이 없어 이곳저곳을 들추어봤다. 사이트에는 단순하게 코스를 소개하고 코스마다 화려하게 부친 이름이 솟아오르지만 역사는 알 수가 없었다. 변산마실길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와 주목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마실길의 용어도 우리 땅 걷기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변산마실길을 시작으로 ‘모악산마실길’, ‘내장산마실길’, ‘덕유산마실길’ 등을 차례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2009년 6월에 새만금전시관에서 격포항까지 18㎞를 걷는다. 부안군청의 주도로 2009년 10월 17일에는 1,0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안마실길 개통식이 열렸다. 그 뒤 코스를 정비하여 새만금홍보관에서 줄포의 자연생태공원까지 8코스로 변산마실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안 마실길은 해안 길을 걷는 데서 시작하는데 격포 등 바닷가는 본래 군인들이 해안 경계근무를 섰던 곳이다. 어찌 보면 휴전선의 남북분단의 경계가 그대로 남쪽인 부안까지 이어진 것이다. 초소와 초소를 연결하기 위해 군인들이 걷던 길이 그대로 마실길이 되었다. 변산 해안에는 지금도 이용하지 않는 군인들의 초소들이 남아 있고 철조망도 간간이 보인다. 필자가 소개한 사진도 성천에서 격포를 걷다가 만난 쇠로된 설치물이다. 군인들이 경비 중 총을 걸고 전방을 살피던 거치대가 아닌가 한다.
  (사)변산마실길에서 펴낸 『아름다운 변산마실길 200리』에서는 ‘해안초소길’이라는 이름이 있다. 마실길 코스에 해안초소길 만큼 금방 귀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을까. 이 길에는 젊은 청춘들이 총을 들고 바다를 향해 분단을 지켰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남북분단의 긴장이 휴전선에만 있지는 않았다. 간첩선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안에 초소를 만들고 철조망을 치고 경비를 했던 서해의 남쪽 변산에도 분단의 역사가 남아 있다. 변산마실길에서 이런 사실을 숨길 필요는 없다. 마실길을 정비한다며 초소와 철조망의 흔적들을 깨끗이 지우고 매꼬롬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역사란 화려하고 아름다움에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단과 평화’란 이름으로 변산마실길의 역사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 지역의 길들과 차별성을 갖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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