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근 전 부안독립신문 기자

2017년의 성주 소성리를 보며 2003년의 부안을 떠올리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부안뿐인가. 밀양,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마을, 삶터를 지키고자 뿌려진 피눈물이 전국 팔도에 얼룩져있다. 누군가는 지켜내고, 누군가는 잃었지만 그 성패와 관계없이 갈라진 이웃과 무너진 정부, 지자체에 대한 신뢰는 돌이킬 수 없다.
올해 대선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는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해 확답을 피했다. 누락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후 사드를 배치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입장이었다. 그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성주가 문재인 대통령의 부안, 평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졸속으로 사드배치를 결정하고 몰래 들여온 전 정부의 책임을 잊은 게 아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나라처지도 모르는 바 아니다. 사드가 과연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는 있는지, 함께 들어오는 X밴드 레이더가 인체에 유해한지 아닌지도 어떤 면에서는 부가적인 문제다. 그 방법과 태도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7일 그 걱정이 현실이 됐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가 사드 4기 추가배치를 결정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다시 한번 공권력에 의해 상처를 받아야 했다.
이미 국가의 강압적 결정에 분노하고, 그 폭력에 피를 흘려본 사람들은 국가를 믿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사드배치에 찬성한다는 선택지는 전 정부가 기습적으로 사드배치를 결정하고, 성주를 대상지로 결정하는 단계에서 사라져버렸다. 새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명분으로 시간을 번 것은 갈등을 유예한 것이다. 사실 주민들에게 남은 것은 배치 철회 또는 기나긴 싸움뿐이다. 주변에서는 쉽게 말한다. ‘나라가 결정했는데 어쩌겠는가’,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 ‘선거 때는 홍준표를 찍어놓고 이제와 문재인 탓인가’. 그렇지, 이게 빠지면 섭하다. ‘보상금 노리고 행패냐’. 이런 여론이 들릴수록 주민들은 단결할 것이다. 억울함과 한이 쌓일수록 단결은 강해진다. 이런 싸움을 이미 겪어 본 다른 이들도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 강하게 부딪힐수록 갈등은 크게 폭발한다. 꽝! 파편이 튀면 누군가는 정부에 실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주민들을 원망할 것이며, 누군가는 구경하며 박수칠 것이다.
대체 이런 일은 왜 반복되는가? 부안, 평택, 제주, 밀양. 거슬러 올라가면 안면도 반핵투쟁도 있고,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공통점을 뽑아보자면, 에너지(특히 핵관련 에너지시설) 그리고 군사시설(특히 미국과 연관된)이다. 둘 다 국가의 중대사이며 의사결정구조에서 민간이 배제되는 사안들이다. 결정에 소수만 참여하고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사업을 추진 마무리한다. 결정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갈등이 빚어진다. 대체 왜 그 사업을 해야 하는지, 그것도 우리 터전에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반대에 나설 수밖에 없다. 즉 이런 방식의 의사결정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온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나?
최근 신고리원전 신축을 두고 진행되는 공론화위원회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만약 부안 핵폐기장 건설여부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됐다면 어땠을까? 아마 반대했던 주민 중에는 찬성 측 의견에 설득됐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적어도 주민들 사이에, 행정과 민간 사이에 이 정도로 상처를 남기진 않았을 것이다.
빠르고 비밀스러운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도 있다. 그런데 평택미군기지가, 강정해군기지가 그렇게 급하고 비밀스러운 일이었는지 생각해보자. 최소한 반대주민들과 갈등이 벌어지며 지체된 시간만큼은 의사결정할 시간이 있지 않았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돌이킬 방법은 단추를 푸는 것뿐이다. 꼭 끝까지 끼워봐야 단추를 잘못 끼운 걸 깨닫는 어리석음을 범해야하는지 의문이다. 단지 일단 하나 끼웠으니 끝까지 끼워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말이다. 성주에서 갈등 없이 사드를 배치하는 방법은 없다. 최소한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주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갈등을 감수하고 추진하겠다면 그에 합당한 희생도 감수해야할 것이다. 물론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문재인이나’하는 수준의 비아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소성리의 주민들에게만큼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 중 누구도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은 없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2017년의 소성리가, 20XX년의 당신 집 앞에서 재현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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