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장신초·백련초 교사들과 ‘개암사에 남은 백제의 숨결’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걷기로 한 날이다. 어쩌지요? 오전부터 비가오니… 가끔 부닥치는 일이지만 비 오는 날에 야외에서 뭘 한다는 것은 참 껄쩍지근하다. 그러나 시간이 되자 10여명 남짓한 젊은 교사들이 모임 장소에 나타나면서 이들의 열정에 이내 굴복하고 말았다.
하서면에 있는 장신초등학교와 백련초등학교는 학생 수도 적고 교사도 몇 안 되는 작은 학교다. 이들 교사들이 2016년에는 근무하고 있는 하서면 지역을 정작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하서지역을 꼼꼼히 살피며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떤 이는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하는 것” 이라고 했다던데, 교사들은 현장에서 답을 찾고자 한 것이다.
2017년에도 장신·백련 교사들은 함께 계획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안지역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걸으면서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주제는 부안읍내, 우반동지역, 백제의 흔적, 부안의 동학과 시대 등이다. 이들 교사들과 함께하면서 지역교육의 미래와 희망을 생각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우리는 역사 과목을 공부했다. 그러나 한국사는 롤러코스트처럼 끝없는 곡예를 해왔다. 해방 직후에는 친일파 이병도 등이 한국사 교과서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쿠테타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한국사를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비장하게 포장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친일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었다. 80년대부터 젊은 역사가들은 기존의 역사와 다른 역사연구로 왜곡된 역사를 되돌려 놓으려 노력했다. 동시에 우리와 가까운 현대사들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근현대사 과목을 없애버렸고, 그 뒤 박근혜 정권 때는 국정교과서 문제로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이 컸는가. 왜 정권은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길들이려고 할까? 역사는 행동을 동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며 자신에 대한 역사 평가를 미리 확정하려는 꼼수는 아닐까. 참 부질없는 짓이다.
부안 사람들은 거친 땅을 일구고 바다에서 목숨을 건 땀내 나는 역사 속에 있었으며, 국가의 위기에는 눈 감지 않고 동학농민전쟁과 항일 의병전쟁에서 목숨을 내놨다. 그러나 그동안 지역 역사는 소외되었다. 연구자도 적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적어 지역 민담이나 전설이 지역사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정작 지역 연구자들이 지역 관련 책을 내봤자 낭패다. 지역에서 조차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땀내 나는 지역 관련 책들은 지역 문화의 길을 내고 튼실하게 하는데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임에도.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한다. 지역의 역사를 들춰내서 빛으로 끌어내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부안 사람들의 몫이다. 장신·백련초 선생님들의 끝없는 지역사 찾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저 작은 학교에서 피워 올리는 젊은 교사들의 열정이 부안교육과 지역의 희망이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