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총각의 눈물겨운 순애보

“사람 얼굴에서 어떻게 저렇게 예쁜 보라색이 나온디야!”

어제 밤에 또 뱃살 통통한 언니는 사랑하는 그 사내한테 얻어맞은 모양이다. 57국에 5376번으로 한 통화만 때리면 대한민국 어디든 신속배달을 책임지는 순정다방에서 왁자지껄, 레지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영화도 막이 오른다.

서른여섯 살 시골총각 석중(황정민 분)이. 흙이 소똥을 먹어야 힘을 쓴다는 그의 사랑은 단순하다. 민노총 말고, 삼노총(젖소를 키우는 노총각 셋) 중 하나로 그는 어느 날 스쿠터를 타고 가는 은하(전도연 분)와 눈이 맞아 그만 뿅 가버린다. 은하는 커피를 배달하고, 석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순정다방 미스 전을 찾아가 방금 짠 젖소우유와 장미송이와 러브레터를 바치고…….

“은하씨, 낮에는 일할 것이고 밤엔 뭐하세요?”
“긴긴 밤 뭐해요. 돈 벌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숫총각 돌석중에게 러브샷을 권했던가, 이런 노래를 불러가며. ‘그냥 편한 느낌이 좋았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게 뭐야 점점 남자로 느껴져 아마 사랑하고 있었나봐 오빠 나만 바라봐 바빠 그렇게 바빠~’ 노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은하의 ‘왁스’가 있다면 석중에겐 용필이의 ‘일편단심 민들레’가 있었다. 님 주신 밤에 씨 뿌리고 사랑의 물로 꽃을 피운. 아,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백원짜리 동전을 던져 숫자가 나오면 차에 타고 그림이 나오면 안 타는.

낮에는 티켓 끊어 여관방이나 들락거리고, 밤이면 단란주점에 나가는 여자, 은하. 그렇고 그런 여자가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석중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은하, 그녀는 나에게 천사이며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여자다. 싸나이 그 순정 하나로 둘의 달콤한 신혼생활은 시작된다.

현실이 아닌 무지개를 좆는 날엔 그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지만 아, 어찌 커다란 고무다라에서 벌거벗고 목욕하던 그 장면과, 밤바람에 꽃잎 날리던 그 꽃그늘과, 옥상에 펄럭이던 빨래들을 잊을 수 있으랴. 인생 10할 중 1할의 그 행복이 없다면 어느 누군들 그리움의 수첩을 꺼내들 수 있으랴!

그러나 행복했던 1할의 시간도 잠시잠깐. 서러운 세월만큼 누군가 안아주길 바랐던 그녀에게 과거의 남자가 찾아오고 그녀는 석중 곁을 떠나 여수항구로 흘러든다. 에이즈가 등장한 것도, 에이즈임을 숨긴 채 남자들한테 몸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힌 것도 그 무렵. 여수항구에 심수봉의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주던 단 한 사람 커다란 어깨 위에 기대고 싶은 꿈을 당신은 깨지 말아요.

그런데 왜였을까. 면회를 온 순정파 석중이 농약을 잘못 마셔 잘려나간 성대에서 절규하듯 둔탁한 쇳소리를 내자 이 관객 저 관객이 눈가로 손을 가져간다. 나도 저렇게, 누군가를 향해 온몸으로 한번 외쳐보았으면!

“은하야, 사랑해! 오빠, 미안해. 은하야, 사랑해. 오빠,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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