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클릭 이사람
클릭 이사람- “그래도 산이 좋아요”
   
▲ (사진 왼쪽 故 박영석 대장의 아들 박성민 씨, 오른쪽 진재창씨)

산악인 진재창(52)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소개하기에는 뻔하고 평이한 말이지만 때로는 이 한 마디가 긴 울림을 준다. 진재창(진서면. 52세)씨가 그렇다. 보이는 그대로 작지만 다부진 체구. 아이처럼 순해 보이는 얼굴에 눈매가 인상적이다. ‘산 타는 사람’의 눈이 모두 그럴까? 맑게 비치다가도 한순간 흐려지는 눈빛.
9월 첫날 내소사 길목에서 만난 진재창씨.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전 피지를 다녀와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진재창씨는 SBS ‘정글의 법칙’ 촬영팀에서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 3년째다. 사모아, 통가, 파푸아뉴기니…… 곳곳을 다녔다. 한번 촬영을 하면 15일이 걸리는데 끝나고 나면 사나흘 입맛이 없다. 밤낮에 관계없이 촬영을 강행하니 스텝도 출연자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진재창씨는 고향 후배 허정피디의 부탁으로 정글의 법칙 촬영에 참여하게 됐다. 몸값 비싼 스타들이다 보니 안전담당에 전문산악인의 손길이 필요했다. 첫 촬영 때는 실망이 컸다. 암벽등반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출연자들이 강을 건너거나 야쟈수를 오를 때 줄을 설치해주고 잡아주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몇 장면 안 되다보니 텐트를 쳐주고 관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한번은 스텝들이 촬영을 나갔는데 밥 때가 되었더라구요. 돌아오면 피곤할 텐데 그래서 밥을 해줬죠. 그다음부터 계속 하게 되더라구요. 이제는 정이 들어서 라면도 끓여주고 싶고. 내가 요리를 잘해요. 그래서 날 부르나? 하하하.” 진재창씨는 안전담당이 아니라 정글의 법칙 셰프라며 농담을 던졌다.
진재창씨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산악인이다. 대학 때 산악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레닌봉을 등정한 후 한동안 산을 끊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경제적으로 고된 산악인의 삶에 회의를 느꼈다. 언제나 ‘흰산’이 그리웠지만, 선배들이 몇 차례 찾아와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산은 다시 진재창씨를 불렀다. ‘코리안신루트 개척 프로젝트’ 팀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산사태를 당했다. 후배 두 명을 잃었다. 진재창씨는 오기가 생겼다. “저게 어딘데 후배들을 데려갔는지 가봐야겠다.”
진재창씨는 2년 동안 대원들과 팀웍을 훈련했다. 그리고 2009년 ‘코리안신루트 개척 프로젝트’ 부대장으로 참가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올랐다. 세계 산악사에 큰 업적이다. ‘등정’은 누군가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산을 오르지만 신루트 개척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흰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다. 낙석과 눈사태 같은 위험이 더 크다. 진재창씨 말대로 “죽음을 넘나드는 길”이었다.
2년 후 ‘코리안신루트 개척 프로젝트’는 다시 안나푸르나에 도전했지만 이때 진재창씨는 사업을 하느라 참여하지 못했다. 한창 사업을 시작해 분주한 어느 날 뉴스를 통해 고 박영석 대장과 팀원들이 눈사태로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재창씨는 모든 것을 접고 바로 네팔로 향했다. 수색대를 이끌고 형과 동생들이 올랐던 곳을 찾았지만 눈사태는 또 일어났다. 찾을 수 없었다.
산악인은 서로 줄을 묶고 생사의 고비를 넘는다. 서로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형제를 한꺼번에 셋이나 잃고 나서 1년 동안 술만 마셨다. ‘그때’라는 말만 꺼내도 진재창씨는 눈물을 흘린다.
“그때, 내가 함께 갔으면……. 내가 부대장이니까. 때에 따라서는 리더가 무모한 도전을 할 때가 있거든요. 형, 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까 가지 말자. 느낌이 이상하다. 그러면 영석이형이 내 말은 꼭 들었어요.” 
이제는 무서워서 흰산은 도전하지 못한다. 트래킹만 할 생각이다. (故)박영석대장이나 후배들만큼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을 못 봤기 때문이다. “죽음을 왔다 갔다 하는데 내 목숨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는 없잖아요?”
진재창씨에게 그래도 산이 좋으냐 물었다.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정이 드니까요.” 
(사진 왼쪽 故 박영석 대장의  아들  박성민 씨, 오른쪽 진재창씨)

이일형 기자  ulisae@daum.net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일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